울산과 포항은 과연 합리적 선택이었을까요? 탄약뭉치

서해교전 그리고 노무현의 행동...

이오공감에 오른 포스팅에서 댓글로 달던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이쪽으로 옮겼습니다.


울산과 포항이 과연 당시의 한국군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요?

울산급의 개념연구가 시작된 70년대 중-후반 당시 해군 최대의 위협은 60년대 중반 도입된 러시아제 스틱스 계열 함대함 및 지대함 미사일이었습니다만. 그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방안" 은 울산급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상대의 공격을 직접적으로 방어할 대공체계도 없고, 상대사거리가 우월한 대함 미사일도 없었습니다.
(대함미사일은 추후 우여곡절끝에 부여되었지요, 이 이야기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따로 포스팅 해야 할듯)
울산의 주무장은 대부분이 함포입니다. 함대함이나 지대함 미사일의 사거리 안까지 대형함이 들어가서 대체 뭘 잡아야 할까요?
그리고 이에 필적하는 위협이었던 잠수함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책 역시 찾아볼수 없습니다.
네덜란드가 70년대에 쓰다가 동남아에 팔아넘긴 소나 하나와 경어뢰 튜브로 구색은 맞췄을 뿐입니다. 서해 같은 곳에선 온도층만 엉켜도 가시거리보다 탐지거리가 짧고, 패시브에선 잠수함이 턱밑을 지나가도 모를 쓰레기죠.
그렇다면 한국 입장에서 제가 말한 위협에 대응할 능력이나 그 해법을 아는 사람이 정말 없었을까요?
ALT-3이 70년대 초-중반부터 소요가 재기되어 77년 도입되었으며, 83년 당시 "세계 최초로" 헬리콥터를 통한 공대함 전과를 올렸으니 울산 설계/건조시기에 해군이 해상항공세력을 통한 비대칭 대함전투 개념 및 대잠전투개념을 잡지 못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대함은 어떨까요. 70년대 말부터 개념연구 시작해 81년부터 개발 들어간 해룡 기획은 정부정책상 중도에 사장되어 버렸습니다. 문제가 있는 기본설계였지만 개량이 불가능한 설계도 아닌데 말입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엑조세와 하푼이 도입되었지만, 두 미사일은 장애물이 많은 도서지역에서는 반사체를 아예 대형 클러터로 처리해 버리거나 외려 표적으로 인식해 달려들기 때문에 섬이 많은 근해지역에서는 운용이 극히 제한됩니다.
하푼 블럭 2나 일부 미사일이 GPS와 전지구 해안선정보 입력체계를 갖추어 고정된 물체(=섬)의 반사파를 무시하게 함으로써 겨우 근해 사용이 가능해졌을 뿐입니다. 해안선과 도서에 바짝 달라붙어 기동하는데다 저가치 표적을 대량으로 남하시키거나 지상의 지대함 사이트를 애용하는 북한군에게 대형 대함미사일이 유용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대잠전은 어떨까요. 분명 대잠에 대해서는 인프라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 90년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만...해사 1X기 이후에 많은 장교들이 미국에서 대잠코스를 이수했으며, 국내에는 (구형이지만) 헬리콥터 탑재 개조를 받은 구축함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잠 로켓/어뢰나 헬리콥터의 유용성을 몰랐을까요?
상기에 언급한 요소들은 미국이 팔지 않는 품목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 아닌 타국에서는 구입할수 없는 것들도 아닙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국 해군이 저런 체계들을 몰랐거나 아예 운용할 능력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울산의 기본설계는 JJMA가 지원해 줬습니다.
그 덕에 건조하면서도 뭐가 틀린지 몰라서 버벅대다 선체 틀어지고, 그거 수정한다고 들이붓고...과연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설계나 건조 경험이 얼마나 쌓였을지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나마 현대적인 전투함과는 한참 동떨어진 설계여서 KD-1 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준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거 도움이 된걸까요 안된걸까요.

그렇다고 당시(80년대 초반) 돈이 없었을까요.
돈이 풍족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76/40mm 함포나 거기에 딸려들어가는 사통, 가스터빈 같은것도 절대 저렴한 물건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획득 가능한 "유용한 대안" 에 투자할 돈 정도는 울산 척수 줄이는 정도로도 대응이 가능합니다.

글쎄요...소총이나 쏘며 도주하는 고속 간첩선 잡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경우에 한해서는 최강의 전투함) 과연 울산이나 포항이 70~80년대에 걸쳐 북한이 가진 주된 위협 - 대함미사일과 잠수함- 에 대해 유용한 대응책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한국에게 정말 울산과 포항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 이었을까요?

ps: 이걸로 3개째 NC(No Car)포스팅!

덧글

  • ViceRoy 2007/12/02 12:10 #

    다음 포스팅을 기대하겠습니다[꾸벅]
  • 행인1 2007/12/02 19:30 #

    결국 해군과 해전에 대한 박통의 마인드가 거기까지였다....일려나요?
  • Luthien 2007/12/02 19:38 #

    좀 더 끌고나가면 욕설밖에 안나올 결론이 나오겠지만...
    괜히 이오지마 가고 싶지 않으니 이쯤에서 스톱합니다.
  • Ya펭귄 2007/12/02 19:53 #

    80년대 초반이야 돈 없는거 맞죠... 석유파동... GNP대비 국방비 폭락...
  • Luthien 2007/12/02 20:21 #

    돈없다는 핑계는 아래쪽에서 의외로 비싼배였다는 결론으로 카운터.
    정말 돈 없고 배 필요했으면 녹스나 메코 리스나 라이센스가 훨씬 싸고 (전자는 FMS, 후자는 당시 독일의 수출차관) 효과적이었을겁니다. 그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 paro1923 2007/12/02 23:01 # 삭제

    군사정권의 공도정책, 아니 공해정책(...)입니까...
    고려 무신정권은 본토를 버리고 틀어박히더니만, 얘들도 과연 그 후예... (...)
  • 지나가던 이 2007/12/03 15:32 # 삭제

    '작심삼일'이라고 하루 안 지나 '구루마' 포스팅 나온다에 한표 던집니다.
  • ssn688 2007/12/03 16:08 # 삭제

    대통령이 일일이 세부사항을 간섭하여 결정을 하지 않는 한, 건함이 아햏햏한 것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군은 '전문성'이란 이유로 (인사 문제와 어느 회사에 이권을 줄 것인가를 빼면) 정책결정에 있어선 상당히 높은 자율성을 누려왔으니까요.
    강영오 제독이 해군의 지난 건함 정책을 비판적으로 잠깐이나마 언급한 대목이 있는데, 1.애초에 FFK 자체가 잘못된 것 2."해양전략에 일가견이 있다"는 신임 참모총장은 한술 더 떠서 PCC 사업 3.제발 총장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하는 건함은 이제 그만... (먼 산)
  • ssn688 2007/12/03 21:06 # 삭제

    아, 지금 논문을 찾아보니("균형함대의 발전"...게재지명은 찾지 못했습니다 -_-) FFK가 애초부터 잘못이었다는 기술은 없군요. FFK이후 "총장이 바뀔 때마다" PCC, KDX-1, KDX-2, KDX-3, 경항모+3천톤 중잠수함...등으로 신규 사업이 하나씩 쏟아진다는 비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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