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어떻게 항모를 구매하였는가.

2차대전 패전 이후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이탈리아 해군에게 볕들날이 돌아온 건 역시 냉전 때문이었습니다.
소비에트 백곰씨들이 흑해와 지중해를 힐낏거리는게 NATO 입장에서는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실제로 레바논 사태때 소비에트 해군은 전함을 출동시킨 미군에 맞서 모스크바급을 필두로 하는 함대를 보내 위력시위를 하기도 했고, 블랙컴이라고 알려진 정규 항모(후일 쿠츠)는 아예 흑해의 조선소에서 건조해 버렸습니다. 즉, 나름대로는 실제적인 위협이었던 겁니다.
왕년의 영국 지중해함대마냥 미국 해군의 6함대가 나와있긴 했습니다만, 유사시 6함대를 대신할만한 존재도 필요했고...결국 여차저차한 관계를 거쳐 이탈리아 해군은 1975년 해군정비법을 입안하고 아드리아해 제해권 확보와 지브롤터-보스포러스 해역 (즉 지중해 동-서) 을 커버할수 있는 작전능력을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탈리아 해군은 넓은 해역을 통제할수 있도록 미국 해군이 연구하던 재해함 (Sea Control Ship, SCS) 개념과 영국이 마악 완성한 인빈시블급 헬리콥터 순양함 개념을 적용하여, 기존의 비토리오 베네토급 헬리콥터 순양함보다 몇 배는 강력한 헬리콥터 전력으로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공격원잠에 대항할수 있는 새로운 헬리콥터 순양함 건조에 나서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로직은 일본에서도 찾을수 있는데...이건 다음 기회루)
여하간 초기 기획시 신형 대잠 순양함은 기준배수량 을7500t 급으로 키워 종전의 헬리콥터 순양함인 비토리오 베네토에 비해 크게 대형화하고, 여기에 기존의 구축함과 동등한 무장을 갖추어 독자 전투능력을 확보할 예정이었습니다.
물론 동시에 6대 가량의 중형 헬리콥터를 운용할 수 있는 전통갑판과 격납고 기반의 항공기 운용체계야말로 새로운 대잠순양함의 핵심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전개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해군은 여기에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유사시 NATO 동맹국의 해리어가 공조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명목으로 갑판의 강도 및 내열성, 엘리베이터의 크기나 지탱하중 등을 헤리어 운용을 기준으로 설계해버린 겁니다.
게다가 한술 더떠서 ,선체 전방 갑판구조물을 6도 가량 기울인 스키점프 형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국처럼 탈착이 가능한 스키점프대도 아닌지라...그냥 함수 비행갑판 공간을 잡아먹을 뿐인, 구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80년대 초입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역시 “해리어 탑재”를 고려하거나 소량 탑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선에 머물렀으며, 이탈리아의 패전후 제정된 해군법에도 “공군 외의 전투기 보유 금지”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즉, 그때까지만 해도 쥬세페 가리발디라고 이름붙여진 새로운 대잠순양함에 헤리어를 운용한다는 발상은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 러.나.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전통갑판형의 경항모와 해리어의 유용성(?)이 입증되자,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해군은 1985년 쥬세페 가리발디의 취역과 함께 전방위적인 로비 활동을 펼친 끝에 해군의 전투기 보유 승인을 포함하는 법 개정을 이끌어내고 , 1989년부터 헤리어를 도입하기 시작하여 1991년 최초의 함재 해리어 대대를 완성시켜버립니다.
공군의 초강력 반발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눈물겨운 투쟁이었을 겁니다. 음음. 각설하고-

...하지만 적이 없었습니다.
이 탈리아가 해리어를 획득한 시기는 소비에트의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로 지중해에 대한 흑해함대의 위협은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영국이나 미국 등이 헤리어의 용처로 고려했던 러시아의 장거리 초계기 활동도 사실상 이탈리아와는 별 관련이 없었던 겁니다. 즉 해리어는 샀는데 별 쓸데가 없었던 거지요.
그리고 훈련하다 한대 떨궈먹어가며 이제 겨우 해리어가 뭔지 감좀 잡았다 싶더니, 냉전이 끝나버립니다.
결 국쥬세페 가리발디는 1995년 소말리아의 평화유지군 철수 지원작전을 위해 인도양에 파견되었으며, 2006년 8월에도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 엄호 및 해역감시임무를 위해 상륙함과 프리깃으로 구성된 기동전단을 이끌고 호송작전을 수행하는 등 이탈리아 해군의 얼굴마담이 되어버립니다 "우리 이탈리아 항모야! 하고 말이죠."
그러나 코소보 전역에서 NATO 공군의 주 기지는 아예 이탈리아에 있었고(=항모가 꼭 필요한건 아니었고)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펼친 영국의 인빈시블과 달리 가리발디의 존재는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었으며. 항구적 평화 작전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전개했을 때에도 해리어를 이용하여 고작 두발 가량의 소형 LGB를 투사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귀중한 급유기 전력을 차출해 2~3회 가량의 공중급유 지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즉 민폐 그 자체죠.
본격적인 CSG 편성까지 기획하는 영국과 달리 이탈리아의 경항모와 해리어 전력은 다분히 상징적이며 현시(Showing the flag)에 집중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와는 반대로 산 조르쥬급 LPD는 이탈리아가 수행한 해외 전력 투사 작전의 실질적 중추로 활용되었습니다.
공군과의 투쟁을 통해 함재기를 쟁취한 쥬세페 가리발디와 달리 산 조르쥬는 이탈리아 내무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건조된-약간 특이한 배입니다.
다른 부서 예산을 끌어올수 있었던 비결은, 대규모 재해 발생시 내무부의 요청에 따라 산 조르쥬급 상륙함과 탑재기, 상륙주정 및 병력을 동원한다는 해군과 내무부의 협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번함 산 조르쥬는 해군이. 2번함 산 마르코는 내무부가. 3번함 산 주스토는 다시 해군이 건조예산을 부담하게 됩니다.
산 조르쥬급 LPD는 복수의 회전익기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전통갑판을 갖추었으나 헬리콥터를 위한 별도의 격납 및 정비공간이 없고, 차량탑재 및 적하능력을 중시한 대형 도크와 Ro/Ro식 접안설비를 갖추어 LPD로 구분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프로필이지요? 예. 해자대 오오스미급의 선조 되겠습니다.
얘들은 가리발디에 비해 화려한 맛이 덜하지만, 훨씬 많은 임무를 부담했습니다.
초 도함 산 조르쥬가 1987년 취역한 이래, 산 조르쥬급 LPD는 소말리아 사태 당시 두척이 동원되어 1993년의 평화유지군 파견을 시작으로 1995년의 평화유지군 철수까지 파견된 이탈리아군의 이동 및 지원을 담당했으며, 1997년 초 알바니아 사태 당시 해병대 투입 및 비전투원 철수, 2006년 레바논 파병시 이탈리아의 병력 및 중장비 수송을 전담하는 등 “이탈리아가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전장” 에는 어김없이 등장하여 보이지 않는 중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신형 항공모함 겸 상륙모함(?)인 콩테 디 카보르 급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다 들 아시겠지만, 헬리콥터 순양함 비토리오 베네토를 대신할 전투함으로 기획되었던 루이지 에이나우디(동급의 첫 함명)는 대체함은 기획 당시만 해도 비토리오 베네토와 달리 상륙능력을 크게 중시한 LHD, 혹은 LHA 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개념은 퍽 거창했었습니다. 냉전 종식에 따라 대잠위협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반대로 인도양 및 페르시아만 등지에서의 원해작전과 그에 따른 파병임무의 확대가 예측되는 상황이니, 항공기 운용과 상륙전력 수송을 동시에 해내는 배를 만들자!
앞선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쥬세페 가리발디의 현시력과 산 조르쥬급의 작전지원능력을 동시에 추구했다고 봐줄수도 있었을 겁니다.
당 시 프로필을 살펴보자면...루이지 에이나우디는 22500t 급의 선체에 4척의 LCM 을 적재하는 길이 25m, 폭 15m 의 웰 도크를 갖추고 있었으며, 선체 측면에도 4척의 LCVP를 수용할수 있는 설비를 갖추었다. 항공기 격납용으로도 사용할수 있는 차량갑판에는 26대의 전차와 50대의 대형 차량을 적재할수 있었고, 620명의 (이탈리아 기준) 대대급 상륙병력 수용능력도 확보하는 설계안이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설계변경에서 선체가 15m 연장되고 배수량도 26500톤으로 확대된 반면, 대형 웰 도크는 완전히 삭제되었으며 함의 중량보정을 담당하는 밸러스트 탱크도 대폭 축소되어 사실상 도크형 양륙함으로서의 기능은 전면 백지화 되고 맙니다.
차량탑재능력과 중장비 수송을 고려한 강화 차량갑판은 외려 면적이 확대되었고 LCVP를 이용한 양륙능력은 유지되었지만, 중장비 수송 능력은 사실상 Ro/Ro 기능을 갖춘 우현과 함미의 60t 급 램프를 통해 직접 접안 후 하역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버렸던 겁니다.
이후 루이지 에이나우디라는 함명은 함명이 2003년 안드레아 도리아로, 2004년 콩테 드 카보르급으로 변경되었으나, 이때 바뀐 것은 거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2002년에 있었던 겁니다.

이 2002년 설계변경은 F-35 도입을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탈리아 해군은 실제로 2015~2018년부터 20대, 혹은 26대의 F-35B 를 도입하여 기존의 AV-8B 해리어 2+ 를 대체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콩테 드 카보르가 F-35 운용능력을 반드시 갖춰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F-35는 기존의 해리어 탑재 경향모-즉 인빈시블 이하 모든 서방세계 전통갑판 경항모- 에서 운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종종 재기되어 왔으므로, 경항모 중에서도 소형에 속하는 가리발디가 F-35를 제대로 운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게다가 JSF 사업의 사업자 선정이 2001년 10월에. 함의 설계변경이 2002년에 이뤄졌다는 것과, 콩테 드 카보르의 엘리베이터나 기타 운영규격이 F-35B 의 운용을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것, 그리고 설계변경후 콩테 드 카보르의 함종 구분이 항공모함(CV)로 변경되었다는 것 등등...의심스러운 부분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의문 이탈리아 해군은 “다목적 함”으로 건조승인을 얻어내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느순간 건조하고 나니 "상륙병력 몇명 태울수 있는 항모" 가 되어버렸습니다. 와아.

이렇게 콩테 드 카보르가 상륙전력을 포기하면서 생긴 상륙지원전력상의 공백은? 당연히 신규함(...)이 해결하게 됩니다.
아 직 쌩쌩한 산 조르쥬급(얼마전엔 개량도 함) 을 대체하기 위해 2015년까지 불철주야 달려보시겠다는 이탈리아해군의 차세대 LHD는 만재 20000t 이상에 전통갑판과 도크를 갖춘 상륙함이 될 것 같습니다. 해군 발표 기준으로 하면 거기에 사령부 요원 150명, 지휘시설, 해병대 600명과 그 장비, 헬리콥터, LCM 등의 상륙정을 적재할것 같고, 차량 갑판에는 전차 28대나 50대 이상의 트럭 및 경장갑차를...

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수치 아닙니까?
“콩테 드 카보르가 안드레아 도리아였던 시절에 요구되었던 상륙전 운용능력 및 구조와 거의 같습니다."
와, 멋집니다. 다목적함 만든다고 돈 받아서 항모로 바꿔치기한 뒤에 상륙함은 따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정황적 증거만 가지고 이탈리아 해군이 “상습적인 바꿔치기” 를 시도했다고 단정지을수는 없을겁니다.
하 지만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상륙함 겸 항공모함” 의 건조를 승인받아 “항공모함” 으로 전환한 뒤에 다시 “전용 상륙함” 의 건조를 추진한 것이며, 이는 “대잠용 항공 순양함” 을 건조한 뒤 항모로 전용하고, 해당 임무는 방기 및 구형 함정에 전담시켰던 쥬세페 가리발디의 선례와 상당부분이 유사한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산 조르쥬급을 대체할 새로운 LHD 역시 “트랜드에 따른” 전통 항공갑판 구조를 채택한 만큼, 제한적 F-35 운용능력을 획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수만은 없다고 본다면...정말. 막장이 되지요.

무어. 그렇다는 겁니다.

ps: 단편적으로 해석하지 마세용. 쉽게 오해의 구렁텅이로 번지점프하게 됩니당.


덧글

  • 로리 2008/01/03 17:32 #

    T.T 고생스럽게 만들었군요... 그런데 만들어서 쓸모가 있을 것 같진 않는데 말입니다.
  • 2008/01/03 17:3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avants 2008/01/03 17:53 #

    어라 해전갤에서 본듯한 글입니다? ^^;;
  • Luthien 2008/01/03 18:01 #

    죄송합니다, 쓰기 귀찮아서 해겔에 올렸던걸 그대로. (먼산)
  • Joo- 2008/01/03 18:23 #

    어쨌든 현대사회에서 결국 예산이란건 모든것 위에 군림하는 것이로군요~
  • 행인1 2008/01/03 18:56 #

    항모한번 가져보겠다고 눈물겨운 드라마를 한편 찍었군요....

    조만간 한국에서 리메이크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 커피프린스 2008/01/03 19:40 #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건 예산
  • band 2008/01/03 20:33 # 삭제

    산 조르쥬급의 재해발생문제의 근원지로 보는곳이 발칸과 중동...으로 보는개 전통적인 웬수(오스만이상 올라가야갰죠? 현제 유고(남부쪽)와 알바니아..))와 키프러스가 개작살나는것(터키-그리스..거기다 보트피플된 중동계..)을 두눈뜨고 보아서라고 하죠. 극동의 모국 해적(??)도 그래봤으면....
  • 네비아찌 2008/01/03 20:47 #

    루뎅님, 그런데 본문 중에 쿠즈네초프의 진수 전 나토 코드를 '블랙캣'이라고 하셨는데, 블랙콤("black sea-combatant/흑해의 전투함" 의 약자)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키로프급은 진수 전에 나토에서 발콤(baltic-combatant)로 불렀구요.
  • Spearhead 2008/01/03 21:16 #

    한국에서는 좀 더 얍삽한 형태로 리메이크 되어봤으면 하네요;
  • 별빛수정 2008/01/04 03:54 #

    그래도 안습의 차크리 나루에벳보다는...(...)
  • Luthien 2008/01/04 04:44 #

    어익후, 요즘은 글 하나당 실수 하나는 꼭 나오네요. OTL
  • Delacroix 2008/01/04 06:03 #

    운하팔 돈으로 항모 지으면 몇대나 지을수 있을까요? 'ㅅ'
  • Luthien 2008/01/04 06:58 #

    어떤 항모냐에 따라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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