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럴 셔먼, 승정원일기 + 조선왕조실록 메모뭉치

금성 교과서 개정(改定)이 개악(改惡)일까?


그리고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해 금성 교과서는 제너럴 셔먼호가 '민가를 약탈'했다고 했지만, 그런 기록은 전혀없다. 제너럴 셔먼호가 분명 조선의 주권을 침해했고, 이에 대해 대처를 한 것은 조선정부의 정당한 대처이다. 그러나 없는 사실을 진짜처럼 써 놓고 그 때문에 조선정부가 대응한 것처럼 서술해 놓은 것은 소설과 다를 바 없다.

-라는 부분을 보고 트랙백.
과연 민가 약탈이라는 사례가 있었을까요.
승정원 일기만 보면...

고종 3년 병인(1866, 동치 5)
7월 25일(신사) 맑음
평양 방수성에 정박한 이양선을 무찌르고 나서 계문하도록 할 것을 청하는 의정부의 계
○ 의정부가 아뢰기를,
“ 평안 감사 박규수(朴珪壽)의 장계 등보를 보니, ‘평양 방수성(防水城)에 정박한 이양선이 조금도 물러가지 않고 상선을 약탈하느라고 총을 쏘아 우리나라 사람을 열두 명이나 살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영부(營府)에 신칙하여 포격하고 화공하게 해서 상황에 따라 응변하여 기필코 즉시 섬멸하고자 합니다.’ 하였습니다. 흉하고 추한 무리들이 이미 금지를 무릅쓰고 틈을 타 들어왔으니, 무찔러 없애는 데 돌아보고 불쌍히 여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먼 곳 사람을 따뜻이 대해 주려는 의도에서 좋은 뜻으로 효유하고 후한 양식으로 도와주었으니, 감사히 여기며 물러나 돌아가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갈수록 더욱 악행을 마음대로 저질러 처음에는 중군을 붙들어 잡아 두더니 나중에는 또 백성을 상해하였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또한 어찌 창궐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인심이 모두 분하게 여기는 것은 이치나 형세로 보아 당연한 것입니다. 무릇 여러 군무(軍務)와 도신(道臣)은 편의에 따라 변화에 대응하여 적절히 처리하여 완전히 무찌르고 나서 즉시 계문하라는 내용을 삼현령(三懸鈴)으로 행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고종 3년 병인(1866, 동치 5)
7월 27일(계미)
좌목
서양 오랑캐를 섬멸하는데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은전을 베풀 것을 청하는 의정부의 계

○ 의정부가 아뢰기를,
“패강의 서양 오랑캐의 소요는 이미 악을 쌓은 것이 오래되어 스스로 하늘의 주벌을 구한 것으로 남김없이 죽여 없앴습니다. 공이 있는 자를 상주고 수고한 자에게 보답하여 은혜로운 포상을 내린 것이 전에 없이 후하였습니다. 분발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앞다투어 용감히 달려나간 자로 말하자면 충분에 격동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만 저들의 배에서 대포를 쏘아 우리나라 사람 1명이 마침내 운명하는 데 이르렀으니, 진실로 지극히 슬프고 측은한 마음을 가눌 길 없습니다. 염하고 묻는데 드는 물자를 별도로 더 돌보아 도와주고 가속을 방문한 다음에 급복(給復)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총알을 맞아 죽은 사람이 7명이고 다친 사람이 5명인데, 후하게 구제하는 은전을 베풀고 일체로 위무하여 늘 돌보아 주는 뜻을 보여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아함. (...)
조선왕조실록은 어떨까요.


고종 3권, 3년(1866 병인 / 청 동치(同治) 5년) 7월 25일(신사) 3번째기사
평양 방수성에 정박한 이양선이 상선 물품을 약탈하고 우리나라 사람 7명이 피살되었다고 보고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 방금 평안 감사(平安監司) 박규수(朴珪壽) 의 장계(狀啓)를 보니, ‘평양 방수성(防水城)에 정박한 이양선(異樣船) 이 상선을 약탈하며 총을 쏘아대는 통에 우리 사람 7인(人)이 피살되었고 부상자 또한 5인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영(監營)과 평양부(平壤府)에 신칙하여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하게 해서 곧 소멸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의리로써 좋은 뜻으로 타이르고 식량을 넉넉히 주어 그들을 도왔는데, 도리어 갈수록 더욱더 포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군(中軍)을 잡아다가 억류하였고, 나중에는 또 백성들에게 까지 상해를 입혔으니 어떻게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군사(軍事)와 관련된 모든 일은 도신(道臣)에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좋을 대로 처리하게 하여 모두 무찔려 없애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원본】 7책 3권 43장 A면
【영인본】 1책 226면
【분류】 *교통-수운(水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미국[美]


고종 3권, 3년(1866 병인 / 청 동치(同治) 5년) 7월 27일(계미) 1번째기사
평안 감사가 평양 백성들이 서양배를 불사르고 영국 사람 최난헌을 죽였다고 보고하다

평안 감사(平安監司) 박규수(朴珪壽) 의 장계(狀啓)에,

평양부 에 와서 정박한 이양선(異樣船) 에서 더욱 미쳐 날뛰면서 포를 쏘고 총을 쏘아대어 우리 쪽 사람들을 살해하였습니다. 그들을 제압하고 이기는 방책으로는 화공 전술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므로 일제히 불을 질러서 그 불길이 저들의 배에 번져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쪽 사람들인 토마스〔崔蘭軒 : Thomas, Robert Jermain〕 와 조능봉(趙凌奉) 이 뱃머리로 뛰어나와 비로소 목숨을 살려달라고 청하므로 즉시 사로잡아 묶어서 강안으로 데려왔습니다.

이것을 본 군민(軍民)들이 울분을 참지 못해 일제히 모여들어 그들을 때려죽였으며 그 나머지 사람들도 남김없이 죽여버렸습니다. 그제야 온 성안의 소요가 비로소 진정될 수 있습니다. 겸 중군(兼中軍)인 철산 부사(鐵山府使) 백낙연(白樂淵) 과 평양 서윤(平壤庶尹) 신태정(申泰鼎) 은 직접 총포탄이 쏟아지고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싸움으로써 결국 적들을 소멸시켰으니 모두 그들의 공로라고 할만 합니다. 포상(褒賞)의 특전을 베풀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처음에는 이양선(異樣船) 이 경내에 침입하였을 때 이미 방어를 잘하지 못하여 심지어 부장(副將)까지 잡혀가 억류당하는 수치를 당하게 한 데다 끝에 가서는 서로 싸우고 죽이게 하고야 말았으니, 이는 전하께서 멀리 있는 나라의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신은 황공하기 그지없어 대죄(待罪)할 뿐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 평안도로 말하면 기자(箕子) 의 옛 도읍지로써 《범금팔조(犯禁八條)》 를 대대로 계승해오고 충성과 의리를 서로 권면하는 곳이라 조정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른 도보다 특별하게 대해 왔다.
이번에 서양의 추악한 무리들이 대동강(大洞江)에 몰래 침입하여 부장(副將)을 잡아다가 억류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였다. 못된 놈들이 사납게 날뛰는 것에 본래 피 흘리며 싸움할 것까지는 못되지만 대체로 그들이 죄악을 쌓은 것이 이미 오래되어 스스로 천벌을 받을 죄를 지었다.
감사(監司)와 수령(守令)들은 기율(紀律)을 철저히 세워서 제때에 적들을 제압하여 이미 온전하게 공을 세웠고 군사들과 장교들, 아전(衙前)들과 백성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용감하게 나아가 적들을 남김없이 섬멸하였으니, 이는 충성심과 의분에 격동된 것이므로 그 기개와 의리가 아주 가상히 여길 만하다.
평안 감사(平安監司) 박규수(朴珪壽) 에게 특별히 가자(加資)하고, 겸 중군(兼中軍)인 철산 부사(鐵山府使) 백낙연(白樂淵) 에게 가자하고 영장(營將)의 이력을 허용하도록 하라. 그리고 평양 서윤(平壤庶尹) 신태정(申泰鼎) 은 맡은 벼슬에 한번 더 연임하도록 하라. 그리고 감사(監司)와 중군(中軍), 서윤(庶尹)에게는 새서(璽書)와 표리(表裏)를 주는 특전을 시행하도록 하라.

전 중군 이현익(李玄益) 에게는 이미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 하더라도 수고롭게 뛰어다니며 일한 공로가 없지 않으니 변지(邊地)에서의 이력을 허용하도록 하라. 그 외 교리(校吏)들에 대해서는 본 감영에서 후하게 시상하고, 공곡(公穀)도 회감(會減)하도록 하라. 감사는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원본】 7책 3권 43장 A면
【영인본】 1책 226면
【분류】 *외교-미국[美]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교통-수운(水運) / *역사-고사(故事) / *군사-전쟁(戰爭)

보시다시피 7월 19일 평양서윤 신태정이 납치당하기 전까지는 셔먼 쪽도 비교적 온건한 상태를 유지한것 같긴 합니다.
셔먼호는 이전부터 "통상" 을 요구해 왔고 (깽판치러 온 건 아니죠...) 지방관아의 문정과 셔먼호 측의 물자 공급 요구를 통해 일정량의 식료품을 공급받아 왔습니다. 어차피 당시 대동강 어귀의 민가라면 극히 소수의 육류품을 제외하고는 셔먼호에 필요한 물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시위를 목적으로 한 것" 이 아니라면 약탈을 시도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대단위 물자를 보유한 관아는 대부분 강 어귀에서 (민가에 비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 지역에 대한 일정한 지리/교통 정보와 약탈을 위한 운송수단 (수레, 소, 말 등)을 확보하지 않는 한 관아를 약탈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제네럴 셔먼 호 자체는 굉장히 작은 배입니다.
7월 8일 황해감사 박승휘의 문정기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배 의 모양은 길이가 18장(丈), 넓이가 5장, 높이가 3장이었고, 돛대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높이가 15장, 하나는 높이가 13장이었으며, 굵기는 세 아름 정도 되었다. 두 개의 큰 돛은 흰색이었으며, 돛대의 밧줄에는 또 작은 돛 두 개를 얽어매었는데 역시 흰색이었고, 숙마(熟麻) 줄을 돛대와 돛 좌우에 각각 12줄씩 늘어뜨려 놓았다. 나머지 배에서 사용하는 잡다한 물건들에 대해서 모두 물어봤으나 저들이 글로 써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할 수 없었다. 잡다한 물품들과 기계들, 각 사람들의 소지품 외에도 배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으나 보여주지도 않았고 또 자세히 대답해 주지도 않았으므로 그 수량을 맞추어 보기는 어려웠다. 큰 배에 딸려 있는 작은 배는 길이가 3파(把), 넓이는 2파였으며 푸른 색으로 칠하였는데, 돛대와 돛은 없었다.

실제로 제네럴 셔먼 호에 대한 미국측 기록을 보면 60x8x5 m, 80t 급에 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문정의 내용에는 비교적 신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승휘가 거론한 "승무원 24명"은 크기에 비해 보다 신뢰성이 있다고 봐도 될겁니다.
스물네명의 인력에 소형 보트 한척, 화승총과 단사정 함포. 이 터무니 없는 인력만으로 직접 약탈을 시도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보시는 바 대로입니다. (...)

아마 약탈은 안했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약탈할 재물은 없으니.
그런데 총 맞고 포 맞아 죽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 있었을까요? (사상자 대다수는 군인 아니었고, 1차 교전 이후 백성들은 멀찌감찌 물러났습니다)
환재집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양반이 미쳐 날뛰었다 같은 과격한 표현 쓸 정도면, 좀 심하게 막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덧글

  • 행인1 2008/11/30 17:53 #

    요즘 같은 시기라면 "좌파가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조작했다. 실록과 일기도 수정해야 한다." 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농담 아님)
  • paro1923 2008/11/30 19:41 # 삭제

    [조선왕조'수정'실록]입니까... (......)
  • Luthien 2008/12/01 00:35 #

    그럴리는...
  • 행인1 2008/12/01 12:02 #

    백과사전도 못믿겠다고 펄펄뛰는 자들이니 조선왕조실록이라고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듯 합니다. 아마 "좌파들"의 한문 해석이 잘못된거라며 난리를 칠지도 모르죠.
  • 8비트소년 2008/11/30 18:44 # 삭제

    옛날 5공때 계몽사에서 발간한 한국사 이야기에도 셔먼호 막장짓 한건 잘 나와있던데 왜 이제와서 난린지 모르겠네요. 미국이 나쁜짓 한건 다 가려줘야 되는건지?
  • Luthien 2008/12/01 00:35 #

    미국 막장짓이라기 보다는 미국 깡패 막장짓이지요, 그래서 더 한심한 거고.
  • 레인 2008/11/30 20:41 #

    라뎅님이나 루뎅님이나 굇수. 역시 메이저 블로거!
  • Luthien 2008/12/01 00:35 #

    전혀요.
  • sephia 2008/11/30 21:40 # 삭제

    어쨌든 분명 기록도 있는데 왜 난리인지 모르겠음.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사관인데. 당시 사관들이 정치에 농락당할 이는 아닐테고 말이에요. -_-;;

    지금 정권은 진짜 모아놓고 한번 실미도로 보내서 거기서 지옥의 역사교육을 시켜야. ㄱ-
  • Luthien 2008/12/01 00:35 #

    그닥...
  • 번동아제 2008/12/01 00:06 #

    보통 셔먼호에 의한 식량 약탈설의 근거 사료로 삼는 것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가 아니라 국왕의 일기인 일성록이죠.

    일성록에는 二十二日午時馳報則異船少無退去之意或掠奪商船之糧米饌物銃放所及我人被殺至爲七人被傷亦爲五人之多云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승정원일기나 실록은 모호하게 상선을 약탈했다고 나오지만 일성록에는 약탈의 객체(->상선의 식량)을 보다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제너럴셔먼호가 22일 해적선으로 돌변, 조선측의 식량을 약탈했다고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긴하죠.

    문제는 상선과 민가는 또 다른 것이라 일성록만을 근거로 이야기할 경우 약탈은 약탈이지만 "민가" 약탈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애매한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 Luthien 2008/12/01 00:38 #

    민가는 확실히 얻을 것이 없지요. 곡류는 종이 다르고 육류는 없는거나 마찬가지고, 식음료야 민물에 있고, 재물이라곤 가진게 없으니.
    인력 규모도 작아서 이미 평양 병력이 강변에 배치된 이후에는 상륙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을테고요.
    본문은 그냥 약탈 + 민간인 상해가 있었다. 정도입니다. 더 이상은 저도 아는게 없어서료. (...)
  • 번동아제 2008/12/01 00:43 #

    본문이라 하심은?

    승정원일기나 실록에는 단순히 상선을 약탈했다고 되어 있지만
    일성록에는 掠奪商船之糧米饌物이라고 약탈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는 것이 제 댓글의 요지입니다.
  • Luthien 2008/12/01 00:48 #

    본문= 포스팅입니다만. (갸웃)
  • 번동아제 2008/12/01 00:53 #

    뭔가 서로 동문서답한듯..^^ 무슨 말인지 알았음.
  • Luthien 2008/12/01 00:57 #

    그러게요. 전 졸려서 이쯤 퇴장하겠사옵니다. T-T
  • 빠대 2008/12/01 12:13 # 삭제

    냥냥냥. 털어먹을 게 없어서 민가는 털지 않았습니다만 포는 쐈습니다.
    냥냥냥. 털어먹고 싶어서 상선은 약탈했지만 민가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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