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양요-제네럴 셔먼호 격침 사건 간단 정리 (1) - 셔먼호 출동 메모뭉치


아, 이런거 적으면 왠지 IFF 장비 망실한 기독교 분들이 으르렁댈거 같지만, 한다고 했으니 시간을 쪼개서라도 해야지요.
대신 내용은 부실합니다아.

영국 런던 선교회가 중국으로 파견한 선교사인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는 선교회 보고를 통해 1865년 치푸에서 최초로 조선인을 만났으며, 이때부터 조선어를 익히고 조선에 대한 기본 정보를 조사했다.
그리고 베이징 영사관에 중국 북부로 선교여행을 떠난다고 신고한 후, 산둥 지역에서 중국계 선박을 용선해 9월 경에 황해도로 진입했다. 일성록에서는 황해감사가  장계를 통해 (음력 기준) 8월 20일 "권총과 철추로 무장한 영길리인이 한자로 된 서적과 서역 물품을 유포했다" 고 보고했음을 기록했는데, 이양선의 존재가 보고되지 않은 것과 양자의 시기를 고려할 때 황해도에서 활동한 영국인은 토머스일 가능성이 높다.
토머스는 중국 선박을 타고 황해안 일대를 주유하며 몇 개월 가량 선교와 조선어 학습을 병행하다 악천후가 시작되는 겨울이 찾아들기 전에 복귀했고, 이듬해 조선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실시했음을 선교회에 보고했다.
기독교계 기록에서는 이 보고 가운데 "작년 선교과정에서 배포한 성경은 널리 유포되었으며, 올해 초 조선 사신단의 수행원으로 온 박씨는 추가적인 서적을 요청했다" (요약) 는 부분을 들어 이 당시 토머스가 박규수와 만나 선교에 대해 논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박규수는 바로 다음 달 평안감사로 임명되었으며, 그 전에 중국에 간 것도 1861년. 단 한차례 뿐이었던 만큼 토머스-박규수 접촉설은 비약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조선에 파견되었던 프랑스인 신부인 리델 신부의 구원요청을 받은 프랑스 공사대리 벨로네는 1866년 6월 2일 프랑스 함대에게 조선에 대한 공격준비를 지시했으며, 7월에는 조선에 입국한 적이 있는 토머스와 접촉해 로즈 제독의 원정함대에 동승해 달라고 요청했다.
토머스는 이 요청을 받고 곧장 치푸로 이동했으나, 정작 로즈 제독의 함대는 그 직전 베트남의 반란 사건으로 인해 함대를 홍콩으로 돌려버렸다. 따라서 토머스는 조선 선교계획을 포기하거나 다른 선박을 구해야 했다.
토머스의 선택은 후자였다. 평양사실平壤事實 에서는 셔먼호의 (필담용) 통역 및 토머스의 수행원으로 기록된 조능봉의 증언을 이용해 셔먼호의 조선행은 토머스가 선주 프레스턴과 호거스에게 조선에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설득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토머스의 월권이었다. 토머스 자신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활동이 정당하다는 편지를 띄웠으나, 정작 런던선교회의 베이징 교구 책임자인 에드킨스의 허가는 받지 않았다.
토머스의 독단은 에드킨스가 런던 선교회 본부에 토머스의 무모한 계획이 국제적 분쟁이나 조선의 추가적인 탄압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편지를 쓸 정도로 심각했다.  당연히 런던 선교회는 토머스에게 베이징 선교지로 복귀할 것을 명령했으나, 불행히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한편 조선에게 구휼되어 청나라로 송환된 미국 선적의 서프라이즈호 선장에게 조선이 외국인에게 호의적이라는 정보를 접한 셔먼호의 선주 프레스턴은 토머스의 제안을 매우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는 7월이 지나기도 전에 텐진에서 영국의 메도우즈와 "대동강 탐사 및 조선과의 교역관계 채결" 을 목적으로 투자 계약을 맺고, 각종 물품을 떼어 선적했다. 선적 물품은 "회금과 양포, 사문포, 사문융,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팔음합" 등의 서방제 완제품이었다.
(7월 12일 문정기록, 토머스의 선적물품에 대한 답변)
메도우즈는 동시에 화물 담당관으로 호거스를 임명하고 통역과 수로안내인, 그리고 화폐감정인을 수배하도록 지시했다.
참고로 제네럴 셔먼호는 일반적으로 미국 해군 소속의 USS 프린세스 로열을 개칭한 선박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프린세스 로열 호는 제네럴 셔먼으로 개칭된 적이 있지만, 정작 이 제네럴 셔먼은 1874년에 해체되었으므로, 대동강에서 침몰한 제네럴 셔먼과 동함일 리가 없다,
또한 USS 프린세스 로열은 전장 200피트, 폭 27피트, 건현 16피트에 배수량 619톤으로, 박승휘의 문정기록에서 길이18장, 넓이 5장, 높이가 3장이라고 기록된 셔먼호에 비해서는 현격하게 크고, 20여명의 인원만으로는 장기 항해를 하기 적합치 않다.
선창은 단층, 혹은 제한된 복층 구조일 가능성이 높으며, 실질적으로 적제 가능한 화물의 중량 역시 많아야 20t 을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네럴 셔먼 호는 선주 프레스턴, 선장 페이지, 항해사 윌슨의 지휘 하에 텐진에서 십여명의 선원과 화물을 적재한 채 출항해 7월 29일 치푸로 이동, 통역 겸 안내원인 토머스와 호거스, 그리고 토머스가 북경에서 동행한 중국인과 호거스가 고용한 중국인 등을 승함시켰다.
동시에 단순 선교사인 토머스나 수로안내인을 보조하기 위해, 현지에서 수배를 통해 조선 인근의 물길을 잘 아는 중국 선박 몇 척을 수로안내 목적으로 고용했다. 고용된 배는 세 척이었으며 셔먼호보다는 작았다.
셔먼호는 양력 8월 9일(음력으로는 7월 1일) 용선과 항해물품 적재를 마치고 세 척의 안내선과 함께 치푸를 출발했다.

ps: 본업을 소흘이 할 수 없으니 3-4회에 나눠 포스팅합니다. (만세 포스팅거리)
참고로 평양양요라는 말은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집대성했던 오문환의 표현입니다.


덧글

  • ghistory 2008/12/04 04:11 #

    치푸는 '취푸' 가 아닐까요?
  • Luthien 2008/12/04 21:37 #

    산둥 치푸인데...발음이 그리 되려나요?
  • ghistory 2008/12/04 22:33 #

    표준 한국어식 표기에서는 '취푸' 라고 하더라고요.
  • 지오닉 2008/12/04 08:31 #

    하지 말라는 짓은 좀 ㅇ>-< (다음 포스팅 기대합니다아~)
  • Luthien 2008/12/04 21:37 #

    꼭 하는 애들이 있지요...
  • paro1923 2008/12/04 21:03 # 삭제

    비극의 시작이...
    (하여튼, 선교사건 모험가든 정치인이든 시키지도 않는데 나대는 작자들은 문제...)
  • Luthien 2008/12/04 21:37 #

    뒷일 생각 안하고 신에게 덤터기 떠넘기는 걸 광신이라고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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