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양요-제네럴 셔먼호 격침 사건 간단 정리 (2) - 접촉 메모뭉치

평양양요-제네럴 셔먼호 격침 사건 간단 정리 (1) - 에 이어.

엿새간의 항해 끝에, 셔먼호 선단은 음력 7월 6일에 한반도권에 진입했다.
첫 접촉이 보고된 것은 용강현 다미면 상칠리 주영포였다. 셔먼호가 보트를 내려 몇 명의 선원을 상륙시켰으나, 별다른 접촉 없이 곧 모선으로 복귀했다. (이때 유일하게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토머스는 보트에 탑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용강현령 유초환은 즉시 문정을 위해 셔먼호가 정박한 곳으로 출발하며, "이양 거선 및 중선 세 척과 소선 두 척"이 용강현에 진입한 사실을 상관인 평안병사 이용상에게 통지했다.
평안감영의 계록에 따르면 평양에서는 유초환의 보고를 접한 것은 8일의 일이다. 박규수는 즉시 유초환에게 "이양선이 풍세가 불리하여 표도(표류)하였는지 문정하라" 고 지시하고, 인근 현령들에게도 혹 인근에 이양선이 나타났는지 잘 살피고 이상이 있을 시 즉시 문정하고 이를 보고하라고 지침한 후 해당 내역을 조정에 보고했다.
세 척의 중선은 최초 목격 후 하루가 지난 7월 7일, 평안도 삼화 방면으로 내려가, 용정포에서 다른 선박과 합류한 후 이틀을 채류하다 서쪽으로 떠났다.
반면 중선들과 떨어진 대선 (셔먼호를 뜻한다) 은 7월 7일부터 진로를 북으로 잡고 천천히 이동해 대동강 급수문 쪽으로 향하려 했다.
셔먼호가 급수문 인근 황주 송산리에 도착하자 황주목사 정대식이 수하의 형리 이기로와 영리 신몽신 등을 파견했는데 이때 서양인 넷과 필담을 할 수 있었다.
셔먼호 측의 네 승무원들은 자신들을 각각 영길리(영국), 미리견(미국), 단국(덴마크) 등 3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삼국인이 함께 행상을 한다고 했다.
셔먼호 측은 자신들이 산동을 출발해 백령도, 초도곷, 석도를 거쳐 평양으로 향하는데, "우리 배는 병선과 비슷하지만" 실은 통상을 하려 한다.
조선의 쌀, 금, 인삼, 가죽 등을  양포(서양 옷감)와 기명 등으로 바꾸면 서로 해롭지 않을 것이다.  물건을 부리면 평양에서 배를 돌릴 것이나 교역을 하지 못한다면 왕경(王京, 서울) 에 닿아서라도 통상을 하고야 말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문정측이 평양에 교역을 할 만한 조선인이 있는가 물으니, 토머스가 "없다" 고 잘라 말했다.
조선측에서 상국의 지시와 국법으로 인해 외래인의 입국과 통상을 금한다고 하자, 셔먼호 측은 "누가 감히 우리를 막겠는가. 우리는 곧바로 갈 것이다. 서풍을 만나면 즉시 출발하겠다" 고 했다.
또한 "너희들 배에 함께 온 사람이 있는가" 하고 묻자 "이 문제는 우리들이 자세히 말해줄 수 없으며, 이는 우리 문제가 아니라 나랏일과 관계되는 문제다" 라고 답했다.
그리고 배 양현에 장비된 대포를 세차례 발사해 위협하고, 소총과 선실의 잡기들을 보여주었다. 다만 양목과 같은 통상용 화물은 선창을 보여주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토마스는 식량과 땔감을 제공하면 양포로 갚겠다 했으나, 문정 측이 상부에 보고하여 허락을 얻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답하자 갑자기 필담을 하던 문정지를 빼앗고 돌주지 않으며 물러가라고 협박했다, 이에 물자 제공을 약속하자 문정지를 돌려주었다.
문정을 담당한 두 사람이 퇴함한 후 황주 관아에서는 대미 한석, 쇠고기 서른 근, 달걀 60개, 야채 스무 묶음, 땔감 스무단을 엮어 보냈다.
이것이 조선 정부와 제네럴 셔먼호의 최초의 문정 사례이다.
황주목 정대식은 상관인 황해감사 박승휘에게 이를 보고하고, 박승휘는 다시 보고 내용을 정리하여 장계로 올렸다.
참고로 박승휘가 올린 승조원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토마스는 나이가 36살, 키는 7척(尺) 5촌(寸), 얼굴빛은 검붉고, 머리칼은 노란 곱슬머리이고, 수염은 검다. 옷차림은 회색 모자를 썼고, 검은 색과 흰 색의 반점이 있는 융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었으며, 검은 색 목화(木靴)를 신었다. 허리에 혁대와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문직(文職)의 4품 관리로서 영국인이었다.
 
호가스는 나이가 37살, 키는 7척, 얼굴빛은 검붉으며, 머리칼은 노랗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다. 옷차림은 흰 서양 천으로 감싼 모자를 썼으며, 누런색의 견사(繭絲)로 만든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으며, 맨발에 등(藤) 줄기로 만든 신을 신었다. 혁대에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무직(武職)의 1품 관리로서 영국인이었다.
 
프레스톤은 나이가 48살, 키는 7척 5촌, 얼굴빛은 검붉으며, 머리칼은 노란 곱슬머리였으며, 흰 수염이 길게 났다. 옷차림은 검은색의 모자를 썼고, 흰 빛의 서양 무명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었으며, 누런색의 견사로 만든 홑바지를 입고, 색실로 섞어 짜서 만든 신을 신었다. 혁대에는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무직(武職)의 1품 관리로 미국 사람이었다.
 
뻬지는 나이가 45살, 키는 7척 5촌, 얼굴빛은 검불고, 수염과 머리칼은 노란 곱슬이었다. 옷차림은 검은색 비단으로 감싼 모자를 쓰고, 자주색 융으로 만든 저고리와 흰 무명으로 만든 홑바지를 입었다. 검은색 가죽신을 신고, 혁대에는 자그마한 서양식 총과 환도를 찼다. 그는 덴마크 사람이었다.
 
이팔행(李八行) 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조반량(趙半良) 의 나이는 28살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키가 7척이었고, 얼굴빛은 검붉고, 머리는 땋아 올렸고, 수염은 없었다. 옷차림은 흰 무명으로 만든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검푸른 색의 삼승포(三升布)로 만든 신을 신었는데, 그들은 다같이 청나라 사람이었다.
 
24명의 이름과 나이에 대하여 물어보니 토마스가 하인으로 범칭하면서 자세히 묻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에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굴 생김새와 옷차림, 머리칼과 수염은 모두 청나라 사람과 같은 모양이었다.
 
배의 모양은 길이가 18장(丈), 넓이가 5장, 높이가 3장이었고, 돛대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높이가 15장, 하나는 높이가 13장이었으며, 굵기는 세 아름 정도 되었다. 두 개의 큰 돛은 흰색이었으며, 돛대의 밧줄에는 또 작은 돛 두 개를 얽어매었는데 역시 흰색이었고, 숙마(熟麻) 줄을 돛대와 돛 좌우에 각각 12줄씩 늘어뜨려 놓았다. 나머지 배에서 사용하는 잡다한 물건들에 대해서 모두 물어봤으나 저들이 글로 써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할 수 없었다. 잡다한 물품들과 기계들, 각 사람들의 소지품 외에도 배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으나 보여주지도 않았고 또 자세히 대답해 주지도 않았으므로 그 수량을 맞추어 보기는 어려웠다. 큰 배에 딸려 있는 작은 배는 길이가 3파(把), 넓이는 2파였으며 푸른 색으로 칠하였는데, 돛대와 돛은 없었다.

셔먼호가 급수문을 넘어 황주까지 진입한 것은 박규수가 장계를 올린 7월 8일의 일이었다.
 이용상의 지령을 접한 유초환은 관아의 관리를 보내 셔먼호를 문정하려 했다.
유초환의 보고가 실린 계록에 의하면, 관리가 접근하자 셔먼호에서 승선을 권했으며, 그 가운데 오귀자 (흑인) 둘을 거느린 양괴 (소개를 했지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가 우리 말을 능히 알았다고 한다.
셔먼호의 승무원 가운데 토머스만이 유일하게 조선어를 습득하고 있었으므로, 토머스가 선외 협상과 최초 접촉을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토머스 측에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모두 서양인이며, 저기 서 있는 사람은 북경인(北京人)이다." "이곳에 잠깐 정박하여 있다가 곧 평양(平壤) 으로 가려 한다."  "우리나라 사람 7명이 무슨 일 때문에 당신네 나라 양반들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우리나라의 배 다수가 당신 나라 삼남(三南) 지역의 강으로 보내졌고, 우리들은 평양 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 기록에서 몇 가지를 추정할 수 있다.
먼저 토머스는 행선지를 평양이라고 명백히 밝혔으나, 자신의 신분과 선교활동 예정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또한 앞선 문정에서 강조했던 교역에 대한 내용도 숨기고, 지형과 주요 지점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스스로의 국적을 숨기다가, 이미 처형당한 일곱 명의 신부에 대해 물어 보며 자신의 국적을 위장하려 한 것이다. 이때 "아국" 이라는 표현을 단순히 서양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우리 나라의 배가 삼남 강중으로 갔다는 부분을 고려할 경우에는 토머스가 명백히 프랑스인을 자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토머스는 북경영사대리 벨로네에게 로즈 제독 휘하 프랑스 함대의 출정 계획을 전해 듣고 승선까지 기획했던 입장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배트남으로 간 프랑스 함대가 중국으로 복귀해 조선 출정을 준비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 수로안내를 담당한 중국 선박을 이용한 허세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미 토머스가 8월 1일(양력) 치푸에서 쓴 편지 중에 "저는 조선에 가서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것입니다...(중략)...조선 해안에서 프랑스 제독을 만나길 바랍니다" 라고 적었음을 감안할 경우, 문정에 기록된 "우리 나라의 배"는 프랑스 함대를 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셔먼호 - 혹은 토머스는 조선에서 즉시 거부감을 일으킬만한 내용인 선교와 교역은 숨기고, 프랑스 함대의 동행을 자처하여 조선 정부나 지방관청을 압박할 의도를 가졌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유초환은 관리의 보고를 정리하고, 인원을 동원하여 셔먼호를 계속 추적하고 있으나 이대로 진행한다면 사흘 내에 패강에 닿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7월 9일에 이를 접한  박규수는 대동강에 면한 각 고을의 감시를 주문하며, 특히 부사 정지현에게는 최초 보고된 이양선 가운데 소선 두 척의 행방이 보고되지 않았으니 이를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이 소선 두 척은 셔먼호에서 내린 보트 한척을 착각한 것임이 후일 확인되었다)

유초환은 7월 9일에 또다른 관리를 구경꾼으로 분장토록 하고 정식 문정 대신 배를 탐문하라고 지시했다. 셔먼호를 정탐하고 온 관리는 "양괴 넷과 변발자 넷이 있고, 양괴 넷 가운데 상좌는 한문을 조금 이해하고 우리 말도 통습했다" 고 보고했다. (이 대목에서 의사소통능력과는 별도로 토머스가 선내에서 -적어도 외견적으로는-주도적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셔먼호측은 구경꾼으로 위장한 관리에게 평양과의 거리를 물어보며 "평양에 성이 있는가" "성문은 몇 개인가" "보물은 있는가" "우리 나라 사람 일곱을 무슨 죄로 살해했느냐" 고 물었다.
이는 8일 문정의 내용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7월 7일 황주에서의 문정과는 그 내용이 판이하다.

셔먼호는 유초환이 지시한 세 번째 문정이 끝난지 하루가 지난 7월 10일에 용강현 사월포에서 강서현 정암포를 지나 보산진 일대를 통과했다. 평양과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강서현령과 보산진 별장의 보고도 당일 중에 박규수에게 닿았다.
이미 수 차에 걸쳐 문정하였음에도 평양을 향해 이동중임을 감안할 때, 표류나 조난 선박일 가능성은 없었다고 판단한 박규수는 평양 경내인 이양선이 평양의 지리에 속한 보산진 안으로 들어온 만큼 평양감영이 이를 처리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즉시 신영 중군 이현익과 평양서윤 신태정, 군관 방익용 등을 불러 이양선을 문정하라 지시하고 계록에 기록한 후 같은 내용을 조정에 보고했다.

차회 예고 : 드디어 이현익은 납치되고, 베프 신태정의 눈물겨운 구출작전이...(퍽)


덧글

  • 한단인 2008/12/04 21:50 #

    ...베프 신태정.. 쿨럭..
  • Luthien 2008/12/06 02:22 #

    하지만 히로인은 다른 이에게...
  • 빠대 2008/12/04 23:54 #

    차회 예고 좀 짱인듯. (어째 저런 쪽으로만 짱구가 자라나)
  • Luthien 2008/12/06 02:22 #

    그런가?
  • 계원필경 2008/12/05 00:49 #

    이제 배에 불을 지르는 차례군요(어라?)
  • Luthien 2008/12/06 02:22 #

    한참 뒤입니다.
  • 지오닉 2008/12/05 01:19 #

    그리고 대동안 기슭에서 등짝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 Luthien 2008/12/06 02:22 #

    ...정작 구출은 다른 이가.
  • paro1923 2008/12/05 20:55 # 삭제

    나이스 보트. (야)
  • Luthien 2008/12/06 02:22 #

    앗, 그러고 보니 보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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