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화약 제작법 메모뭉치


인조 13년, 병조판서 이서가 지은 신전자취염초방에서는 "군관 성근이 알아낸 방법" 이라며 15개 공정을 적고 있습니다.
일단 염초 제작을 위해 낡은 집 부뚜막이나 마루, 온돌의 흙을 구해서, 오줌과 흰 재를 섞고, 말똥으로 덮었다가 완전히 마르면 다시 파내어 불을 붙입니다. 여기서 흰 이끼와 같은 것이 생기면 이것을 물로 씻어낸 뒤에 모아서 다시 가마솥에 졸이면 거친 염초가 되며, 다시 정제하면 화약에 쓸 염초...즉 질산칼륨의 결정이 완성됩니다.
여기에 버드나무를 태운 검은 숯가루와 채굴한 황가루를 섞으면 화약 완성.
다만 이 당시의 방식으로는 탄소(숯)의 함량이 많은 편이라 폭속은 느리고 연소시간이 비교적 길다고 합니다. 즉 폭발용 보다는 로켓이나 포의 장약으로 적합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제조법의 문제는 원료의 제약으로 인해 아무래도 생산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선의 조총병은 광해군 시절부터 급격히 증편되었지만, 화약의 생산 및 비축량은 그리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탄 훈련량은 적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 4만 조선군이 사격 집중과 탄약 분배의 문제로 300명의 청기병들에게 무너지는 참변을 겪었습니다. (...)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숙종대에는 다시 중국에서 화약 기술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그 결과가 역관 김지남의 신전자초방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염초를 얻는데 사용하는 흙을 일반적인 길바닥의 흙으로 바꿨다는 겁니다.
흙과 같은 양의 재를 섞고, 물을 부어 잿물을 만든 뒤에 그 잿물을 두세차례 달여 염초를 만듭니다. 여기에 황과 숯을 섞고, 쌀뜨물로 개어 (-_-) 덩어리를 만든 뒤에 잘 말리면 화약이 된다는 겁니다.
특히 신전자초방에서는 화약 제조시 종전의 방식에 비해 염초의 비율을 올리고 숯은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덕에 연소속도는 줄고 폭속은 빨라져서 폭발시의 위력이 더 나왔다고 하는군요.
동시에 상당량의 화약이 찌꺼기로 남던 종래의 방식에 비해 화약 찌꺼기의 양이 크게 줄어 포와 총을 청소하는 부담도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상적인 비율의 흑색화약은 50% 가량 탄매가 생깁니다만 대부분 날아가 버립니다)

무어, 그렇다는 이야기. (메모용 포스팅)



덧글

  • 학생 2009/04/06 14:20 #

    좋은거 배우고 갑니다 ..
  • Luthien 2009/04/07 00:30 #

    나쁜거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 초록불 2009/04/06 14:27 #

    조선의 화약 제조법에는 알쏭달쏭한 부분이 있는데, 최무선이 알아낸 방법을 아무리 이리저리 읽어보아도 신전자취염초방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종-세조 때까지도 화약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선조대에 이르면 화약제조방법을 잊어버리고 그걸 알아내려고 생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마치 전에는 모르던 것처럼... 아무튼 그런 난리를 거친 뒤에 신전자취염초방이 나온 건데, 그게 태종-세종 때 염초 만들려고 하던 짓과 비교해보면 똑같다는...
  • 신시겔 2009/04/06 20:49 #

    임란 당시 받아들이려던 중국식 염초법은 바닷물을 끓여만드는 것인데, 민가 바닥을 긁어 채취하는 기존 방법에 비해서 민폐도 덜하고 훨씬 손쉬운 방법입니다. 자세히 들어가야 더 알 수 있겠지만, 조선이 화약 제조법 그 자체를 몰랐다기보다는(신전자취염초방 서문에서는 그동안 화약은 자체적으로 못만들고 오로지 중국에서 수입해서 썼다고했지만, 과장이죠. 중국에서 부족한 양을 수입도 했지만 언제나 자체적으로 화약을 제조했습니다.) 화약을 보다 대량으로 쉽게 만드는 법을 터득하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 Luthien 2009/04/07 00:30 #

    최해산이 정리를 했던 게 끝까지 내려가질 않은 것 같습니다.
  • 이준님 2009/04/06 16:18 #

    1. 80년대 이정길-임현식 콤비의 (그리고 꼽사리 "상도"가 나오는) 암행어사라는 드라마를 보면 요새말로 CSI 수사 하는 에피가 나오지요. 화약 개발 -_-;;에 힘쓰는 장인 "일용이 박은수"가 최무선 업적 재현을 하면서 고뇌하는 이야기입니다.(중간에 좌절하는 장면은 완전히 인간승리 드라마이고) 초록불님 말씀처럼 "생난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ps: 그 에피의주인공은 역시 이정길이라서 박은수는 자기가 개발한 화약 시험중 음모에 의한 폭발사고로 핏덩이가 되고 그 죽음의 진상을 찾는다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 Luthien 2009/04/07 00:31 #

    오오. 인간승리 드라마라. 보고싶네요.
  • 계원필경&Zalmi 2009/04/06 21:24 #

    그러고보면 흑색 화약의 찌꺼기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줄은 몰랐습니다... 무연화약의 비율과 비교해보고 싶군요...(덧, 청계천 어딘가에 과거 염초청의 자리가 있죠)
  • Luthien 2009/04/07 00:32 #

    이상적인 흑색화약은 반응시 중량 대비 고체생성물 56%, 기체생성물 44%를 남깁니다.
  • ghistory 2009/04/06 23:30 #

    문외한으로써 신기한 건 도대체 처음 염초제조법을 발견한 사람은 저 자질구레하고 번다한 과정을 어떻게 터득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 Luthien 2009/04/07 00:33 #

    염초는 다른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흙을 끓이건 정한수를 떠다놓고 빌자 하늘에서 만나 대신 질산칼륨을 내려주시건 KNO3만 나오면 되는 일이지요.
    기원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발견과 제조법은 별도의 과정을 거쳤고, 저런 제조법은 질산칼륨 발견 이후에 성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ghistory 2009/04/07 00:36 #

    그렇군요.
  • 이네스 2009/04/07 14:53 #

    정말 저거 처음발견한사람이 신기합니다.
  • 우꼬 2009/04/07 21:49 #

    일본은 어떤식으로 염초를 제작하였을까요? 궁금하네요. ' ')
  • guardunit 2009/04/28 01:28 # 삭제

    /우꼬
    자세히는 모르지만 화약관련 에피소드를 한가지 아는데 말하자면...

    도요도미 시대던가 그 비슷한 시기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들과 무역으로 화약과 총을 사들이고 있었는데 그 화약의 지불 대가가 노예 정확하게 빛을 갚지 못한 채무자였고 상당수가 "일본 여성"이었다고 하더군요.
    화약 한통(대략 1~20kg로 기억함)에 일본 여성 20명인가...의 비율로 교환(?)했다고 하더군요.
    (이건 서로 "노예"에 대한 기준이 틀렸기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일본 상인은 "채무 불이행자"로서 채무를 상환하면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팔았고 구입한 포르투갈 상인들은 그야말로 "노예"로 알고 구매함)

    일본과 포르투갈 상인들의 노예무역은 일본에 외세에 대한 반감 특히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만들었고 일본이 대외무역을 금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은의 유출도 유출이지만... 더이상 팔아먹을게 없으니 노예무역을 한거죠...;
    일본의 낮은 기독교 비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내용이 일본 교과서엔 빠져있다고 들은듯...

    한마디로 초기 일본의 화약 생산량은 매우 낮거나 생산하더라도 질이 좋지 않았기에 대규모 노예무역으로 화약을 충당했던거 같습니다. 뭐 그 이후엔 자체 생산 했겠죠.... 제조법을 구매하던 발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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