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적을라니 초과되서...-_-
사실 장르드라마들이 상투성을 띄는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노골적 표절은 귀찮으니 생략)
가장 보편적인 원인은 작가와 연출자가 자신이 담당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투적인 작품을 찍어내는 작가나 연출가들은 대부분 간접적인 접촉만으로 해당 장르에 대한 전지성을 획득했다고 착각한 상태, 혹은 이해에 필요한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상태로 작품에 뛰어든다.
그런 작가/연출가들은 작품을 진행하며 "구체적인 장면" 을 만들어야 할 때, 자연스레 기억 속에 있는 간접적 접촉의 단편을 "자신이 떠올린 해당 장르의 특색" 으로 착각하게 된다.
문제는 그런 간접적인 단편들은 "청자의 입장에서 납득한 것" 이지,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 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한된 정보는 작중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형태를 구축하는 대신 흐릿한 기억을 모방하게 되고, 결국 통속적이면서도 허술한 이야기가 제조된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들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연출가들은 이쯤에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의 이야기가 복잡한 모방의 누더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허술함을 파묻기 위해 작중에 빨간 조명과 침대를 배치하거나, 혹은 커다란 화염과 권총, 돌려차기를 추가하기 때문이다.
측은하게도, 이런 화려한 은폐 공작들은 "구체적 장면" 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선배들의 은폐공작" 에 대한 피상적 모방에서 출발하고 있다. 기운 흔적을 감추기 위해 실땀 위에 천을 덧대는 셈이다.
이런 전통적 누더기에 익숙해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매일같이 머리를 비운 채 시계바늘을 돌리거나 이야기가 아닌 외부의 요소 (누구 이쁘더라, 누구 멋지더라. 꺄악. 탕. 쾅. 아멘) 에서라도 재미(혹은 시간에 대한 보상)를 찾으려 하지만, 일부는 어설픈 모방에 적응하지 못한 채 특유의 식상함과 허술함에 진저리를 치거나 리모콘을 활용한 엄지손가락 단련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극히 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부류의 경우, 작중의 식상한 패턴을 예측해 내며 자신 안에 있는 뮤즈의 키보드(...)를 발견하거나 "내가 쓰는게 낫겠다" 며 창작의 열의를 불태우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패턴을 답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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