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임진왜란 파병설 관련 질문. 옛것뭉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에 해당 내용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해 봤는데, 일단 명사/명실록, 선조실록 및 수정실록, 해국도지에 관련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한국 외에도 태국사와 관련된 몇 편의 서구/일본 논문에 해당 내용이 다뤄진 것으로 나오는데, 혹시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신 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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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준님 2010/01/17 07:59 #

    김성한 선생의 임진왜란에 보면 "섬라의 대군을 이끌고 왜의 본토를 치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신하가 나옵니다.

    뒤 이야기는 뭐 그런건 비현실적인 사기라고 결론

  • 이준님 2010/01/17 08:14 #

    일단 1974년 9월의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사편찬위원회의 모 박사님이 일본연구 잡지에 기고한게 거의 최초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분이 실록에 있는 여러 남만관련 이야기를 모아서 그렇게 발표했지요. 일부에서는 섬라국의 직접참전이기보다는 명군에 고용된 용병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기도 합니다.
  • Luthien 2010/01/18 17:44 #

    원전 확인을 하려니 꽤나 골치 아프군요.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0/01/17 08:43 #

    개인적으로는 '섬라출병론'의 문제는, 세 가지 문제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샴이 직접 출병을 제안했다는 논의이고, 다른 하나는 명의 뻥카용(?), 다른 하나는 이준님께서 언급하신 용병참전론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데...

    우선 '뻥까(?)'로서 명이 '우리가 명을 내려 섬라로 하여금 병사를 내게(혹은 일본 본토를 공격하게 했다.) 했다.'라는 뻥카(?)는 조선왕조 실록의 '섬라' 검색어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문제에 비해, 실제 샴이 출병을 제안했다는 것은

    '정곤수가 아뢰기를, “섬라(暹羅)의 사신이 중국에 도착하여 상본(上本)하여 조선을 구원하기를 청하였는데 중국 조정에서 그 청을 준허(準許)하였으므로 내년 봄에 군사를 내어 일본을 정벌한다고 하였습니다.”라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일본은 원 세조(元世祖)도 토벌하지 못하였는데 섬라가 어찌 해낼 수 있겠는가.”하자, 심우승이 아뢰기를, “섬라가 비록 말은 쉽게 하였지만 어찌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 선조 33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2월 8일(갑오) 2번째기사

    반면에 샴인들이 명의 용병으로 실제 전투에 참전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사는.

    '선조가 “유정은 남쪽 사람인가?”하니, 윤근수가 아뢰기를, “산서(山西) 사람입니다. 이번에 사천(泗川)·귀주(貴州) 병사와 섬라국(暹羅國) 사람들이 모두 왔습니다. 유정의 사람됨은 가장 아담(雅淡)해서 조금도 남의 것을 범하지 않습니다.”하고, 또 아뢰기를, (하략)'

    - 선조 37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4월 4일(무자) 3번째기사

    '이어 사용하는 각종 군기를 꺼내 보여주고 거느리고 있는 섬라(暹羅)·도만(都蠻)·소서 천축(小西天竺)·육번득능국 묘자(六番得楞國苗子)·서번 삼색(西番三塞)·면국(緬國)·파주(播州)·당파(鏜鈀) 등 투화(投化)한 사람들을 좌우에 도열해 서게 하고 차례로 각각 자신의 묘기를 자랑하도록 하여 종일 구경시켰습니다.'
    - 선조 37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4월 10일(갑오) 2번째기사.

    이정도가 조선왕조실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샴 출병론에 관련된 기사인 것 같네요 ㄷㄷ


  • Luthien 2010/01/18 17:45 #

    실록만 가지곤 진위를 가리기가 어렵네요. (후)
  • 들꽃향기 2010/01/17 09:02 #

    한편 명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다음과 같은데,

    "만력 20년, 일본이 조선을 격파하자, 섬라는 비밀리에 군사를 내어 일본을 직공하기를 청하였는데, 이러한 제안 후에, 중추사 석성은 이러한 (섬라의) 의론을 따르자고 하였으나 양광총독 소언지는 불가하다하여 그만두었다.(二十年,日本破朝鮮,暹羅請潛師直擣日本,牽其後.中樞石星議從之,兩廣督臣蕭彥持不可,乃已)" - 明史, 列傳/卷三百二十四 列傳第二百十二 外國五/暹羅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명실록과 해국도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첨언을 덧붙이진 못할 것 같네요;
  • 행인1 2010/01/17 10:54 #

    샴인들이 참전한것은 확실한듯 하군요. 국가차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 Luthien 2010/01/18 17:45 #

    조직적인 행동, 시점, 역할. 이런 게 꽤 빠져 있지요
  • 히무라 2010/01/17 11:03 #

    저도 샴인들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이상까진 잘...
  • Luthien 2010/01/18 17:45 #

    일단 오는 것부터가 문제라
  • 갑그젊 2010/01/17 12:29 #

    전 흑인들 참전했다는 건 알았는데, 저 쪽 사람들도 참전했었군요~ 오호!
  • Luthien 2010/01/18 17:46 #

    알려져 있긴 한데, 새삼 근거목록을 보니 좀 아리송하기도 하고요
  • 시쉐도우 2010/01/18 22:35 #

    그 '흑인'도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계가 아니라, 말레이계나 인도-실론계일 수도....

    예전에 번동대감님께서 어딘가에서 쓰셨을 때에도 저는 '터번썼다는 걸 봐서 그 쪽 계통 아닐까 싶습니다요~' 라고 했었는데요.
  • 갑그젊 2010/01/19 20:29 #

    흠...(...) 그렇군요;;
  • 백선호 2010/01/23 09:58 # 삭제

    조흥국 교수가 쓴 위 책은 태국이 참전은 제안했지만 실제로 군대를 보내지는 않은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태국의 사료에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 백선호 2010/01/23 10:02 # 삭제

    그러나 조흥국 교수는 명나라에 귀화하고 명나라 군대에 복무한 외국출신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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