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초친 따라질뭉치


중도 저자에 깃발이 내걸렸다.
행상이나 점쟁이, 호객꾼의 깃발이 내걸리는 것은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새로 올린 깃발은 그 문구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비무초친. 무예를 겨뤄 짝을 구한다니.
깃발을 세운 처자-목염자라 했던가-가 권왕처럼 참하지 않은 다음에야 도검권각을 다룬다는 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목염자의 자태는 권왕보다는 정순한 규수 쪽에 가까웠던지라, 기를 세운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창대처럼 생긴 조그만 깃대를 중심으로 수백 군중이 운집했다.
그 가운데 힘 깨나 쓴다는 장한이나 잡배, 어설픈 무림인 등이 어깨를 풀며 깃발 앞으로 나섰지만...

"차핫!"

...죄다 일격에 날아가 버렸다.
정중히 비무를 청한 젊은 협객은 그나마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물드는 선에서 물러났고, 넷째 첩으로 들이겠다며 추근덕대던 거한은 사지의 뼈가 부러진 채 실신하여 담벼락 구석에 파묻혔다.
이런 식으로 손발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예쁘장한 처자 앞에 무릎을 꿇은 남정네들이 도합 열 다섯.
비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세 곱절을 헤아리던 도전자들 가운데 6할은 이미 꼬리를 말고 달아나거나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도전이 끊기자 깃대를 들고 있던 건장한 노인이 깃발을 처자에게 넘겨주며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이 양 아무개가...(귀찮아서 생략)"
"양노인, 그럼 내가 나서봐도 되겠소?"

잠자코 돌아가는 모양을 지켜보던 완안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외쳤다.
처자 치고는 무공이 퍽 강맹해 뵈지만, 전진의 정통 무공을 쌓고 구음백골조까지 익힌 자신에게 상대가 될 리 없으니 잠시 손발을 섞으며 놀아보자는 속셈이었다.
차림새가 썩 훌륭한 공자가 나서자 양철심도 경계하기 시작했다.
혹 부패한 고관집의 자재라면 목염자가 진다면 측실로나 들이려 할 터이고 이겨도 권세를 이용해 보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 저래 철창 한 자루 외엔 의지할 길 없는 늙은이가 반길 만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양철심의 눈에서 경계의 기색을 읽은 완안강은 가벼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평소부터 무공에 관심이 많아 나선 것이지, 무례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 노인께서는 의심치 말아주십시오."
"그러시다면야...얘야."

양철심이 손짓하자 목염자가 쪼르르르 달려왔다.

"...전력을 다해 상대해 드리려무나."
"네? 저, 전력이라니요. 아버님. 그러다가 크게 몸이 상하시면..."
"핫핫핫, 소저. 내가 그리 약골로 보이시오?"

완안강의 이가 하얗게 빛나자 목염자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폭 수그렸고, 양철심은 그녀를 노려보며 조금은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네 스승님을 욕되게 할 생각이더나!"
"...아, 아닙니다. 아버님.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네, 아버님."

목염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완안강의 맞은편에 섰다.
허나 얼굴도 붉고 시선도 땅을 향한 것이, 의연히 권각을 뽐내던 이전 비무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일장이나 제대로 펼칠까 싶었는지 주변에 둘러선 구경꾼 사이에서도 조소가 흘러나왔다.
양철심이 나서 제지하려 했으나 비웃는 소리는 더 커질 뿐이었다. 비무를 시작하는 것 말고는 군중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어 보였다.
결국 목염자는 양철심을 물리고 힘껏 도리질을 한 뒤에 완안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소녀, 공자를 맞아 결례를 범할 수 없으니 소요유 신법 대신 본신의 무공을 사용하겠나이다."
"오오, 본신무공이라. 어떤 것인지 한번 출수해 보시구려. 혹여 앞 사람들처럼 한 수 내에 결정짓는다면 혼약이 아니라 어떤 청이라도 들어드리리다."
"어떤 청이라도 말이십니까?"
"남아가 일구이언을 하겠소."
"그리하오면..."

순간, 목염자의 눈이 음산하게 빛났다.
다리를 깊숙이 딛고 한껏 물린 쌍장에 강맹한 기운을 담는 목염자를 본 완안강은 다급히 구음백골조를 전개했지만...

"흐야압!"

엄청난 기세로 뿜어진 쌍장의 장력에 그대로 양팔이 제압당하며 이십여장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구석에서 동냥바가지를 긁고 있던 거지가 입에 문 닭뼈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하, 항룡십팔장!?!"

...목염자. 무서운 아이.

ps: 바리에이션.
지나가던 매초풍이 놀랍니다. "타, 탄지신통!"
지나가던 어초경독이 대경합니다. "이, 일양지!"
지나가던 구양극이 돌아봅니다. "합마공!?"
지나가던 구처기가 경악합니다. "선천공? 나도 못배웠는데!?"

덧글

  • 아라 2010/02/23 16:17 #

    크리링이 죽었어, 가 생각나는 포스팅이네요.^^;;
  • Luthien 2010/02/24 09:42 #

    흑흑흑
  • 天照帝 2010/02/23 17:15 #

    지나가던 로그너가 심드렁하게 내뱉습니다. "칼바리 블레이드냐?"
  • Luthien 2010/02/24 09:42 #

    MBT쯤 되야 돌아보겠군요.
  • 데프레 2010/02/23 17:29 # 삭제

    그리고 한무리의 검객들이 목염자를 포위하며 검을 빼들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목염자에게 살기 띤 눈으로 노려보며 노성을 터뜨렸다. "이 마녀! 드디어 찾았다!! 네 년에게 맞아 자손이 끊긴 제자들의 원한을 풀겠다!!" 검객의 노성에 울분이 극에 달했는지 포위한 장한들은 사내의 자존심도 팽개치고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목염자에게 패한 자들 역시 검객의 노성에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았다. 안완강은 희미해지는 의식을 겨우 붙들고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가라앉혔다. "내가...내가...고자라니!!"
  • Luthien 2010/02/24 09:42 #

    이건 또 무슨...
  • sonnet 2010/02/23 17:43 #

    "흐흐흐, 흡성대법!"
  • Luthien 2010/02/24 09:42 #

    저것은 파사신검!
  • 바보이반 2010/02/23 18:22 #

    모두가 경악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데 한 소년이 홀연히 나타나 허리띠를 풀며 외치니 "섹시 코만도 비기! 엘리제의 우울한 오후!!!!"
  • 少雪緣 2010/02/23 18:45 #

    나...나신활살권!
  • Luthien 2010/02/24 09:43 #

    쓸데없이 강하잖아요!
  • 히무라 2010/02/23 19:30 #

    비무초진은 할게 못되요...
  • Luthien 2010/02/24 09:43 #

    그리고 목염자는 천하오절의 수좌가 되어 일평생 독신...
  • 들꽃향기 2010/02/23 20:11 #

    저 저거!
  • Luthien 2010/02/24 09:43 #

    저 저거!
  • sine se 2010/02/24 08:19 #

    으앜 웃고 갑니다
  • Luthien 2010/02/24 09:43 #

    개그가 먹혀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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