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쿠스의 위조 옛것뭉치

*좀 심한 축약. 첨부파일은 그냥 시노드가 이런 분위기-란거, 시대가 천년은 다릅니다.

AD 501 년쯤 있던 일입니다.
당시 카톨릭에서는 교황 아나스타시우스 2세 서거 이후 심마쿠스와 라우렌티우스라는 두 교황이 선출되어 투닥대고 있었습니다. 소위 대립교황 시대라고 불리던 때입니다.
선대교황 아나스타시우스 2세는 로마와 비잔틴의 중재를 위해 종교적 악명까지 무릅쓰곤 했습니다만 두 대립교황은 상태가 좀 달랐습니다. 일단 아나스타시우스의 친 비잔틴 성향을 반대하던 로마 교회는 동고트의 테오드릭 대왕에게 지원을 얻어 심마쿠스를 선출했고, 아나스타시우스 2세의 지지자들은 라우렌티우스를 선출해서 대립하던 상태.
양자는 일단 단일교황체제 복귀를 위한 교령 협상에 들어갔습니다만 이게 양자 모두에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형태로흘러갔습니다.
결국 라우렌티우스의 지지자들은 심마쿠스의 스폰서인 테오드릭 대왕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상대 교황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일러바칩니다.
이런 잡다한 일이 귀찮았던 테오드릭 대왕은 로마에서 개최된 시노드 (사제회의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됨) 에서 교인들 끼리 알아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만, 심마쿠스가 시노드 출석을 거부하면서 논의가 좀 난장판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출석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출석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중간에 동고트의 감찰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가...기타등등, 기타등등.
자세한 과정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시노드는 "세속 법정은 교황을 재판할 권한이 없으며, 사도좌를 받은 교황은 오직 주님 앞에서만 심판을 받는다" 고 선언했습니다.
즉 심마쿠스는 무죄-혹은 우리가 뭐라고 할 일이 아님.
(물론 시노드의 발언 중에 심마쿠스를 거부하는 자들은 종파분열론자다~ 같은 대목에서 결국 이 과정이 꽤나 정치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근거로 사용된 문서가 허위였다는 점입니다.
심마쿠스 측은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로마에서 "앞으로 황제도, 왕도, 시민도, 성직자도, 기타 그 어느 누구도 교황을 법정에 세울 수는 없다" 고 선언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삼았는데...이런 적 전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 외에 몇 가지 문헌과 기록, 증언들도 하나같이 "결정적 증거" 는 될 수 없는 것들 뿐이었지만 하나같이 적당히 왜곡되거나 선대 교황들의 선언이나 여타 교회 기록들과 적당히 조합+윤색되어 시노드의 결정을 지지하는 증거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대다수 성직자들조차 근거가 위조된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유지되던 관습을 지지하는 근거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묵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심마쿠스의 위조 (검색 키워드는 Symmachianische Fälschung;) 문제는 이후 거의 1000년 가량 지속된 세속 권력과의 대립과 위조나 위서를 당연시하는 풍조의 원천이 되어 버렸고, 심마쿠스는 "위조교황" (...) 이라는 영구 까임권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처지가 되버렸...다나요 뭐라나요.

ps: 가톨릭이 칭찬받을만한 점은, 적어도 후대에 심마쿠스의 위조가 명백한 위증이었음은 시인했다는 것.


덧글

  • 만슈타인 2010/08/31 07:37 #

    허허 그건 참 대단하네요 --;; 위조가 역사 그렇게 길다니 -- 시인한 점도 대단하지만....

    그런데 그거 시인이 혹시 요한 바오로 2세 때 아닌가요?
  • 데프레 2010/08/31 08:52 # 삭제

    기독교에 위증과 위조는 뭐........흔하죠.
    대표적인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제국을 교황에게 바쳣다고 사기친 것이죠.
  • 행인1 2010/08/31 10:19 #

    서양 고문서학 발달의 배경에는 저런 사건들이 있었다죠.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트위터+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