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 잡설 - 제네시스 FL 탈것뭉치


생각 난 김에 옛날에 쓰다 만 거.



-제네시스의 생선뼈다귀 같은 그릴을 무시하는데 익숙해질 즈음 (그릴 자체에는 여전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2012년형 제네시스가 입체감을 더한 생선 뼈다귀 그릴, 그리고 끔찍한 테일과 함께 등장했다.

사실 업체 입장에서는 FL 모델에 최소한의 투자만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보디 자체에 손을 대야 하는 고가의 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램프류나 후드, 범퍼, 트렁크 리드 같은 디테일이 (원가 절감 겸사) 교체 대상이 되곤 한다.
2012년형 제네시스의 방향성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원형 제네시스의 프로포션 (뭐, 나쁘지 않다) 을 유지한 채로, 눈에 띄는 디테일만을 바꿔 유사 신차효과를 노린 것이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전개라고 할 만하다. 문제는 FL 의 핵심이자 원형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변화한 테일 렘프에 있다.

새로운 테일램프는 기존 테일램프의 외형적 틀을 유지한 채로 내부 디테일만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덕분에 트렁크나 리어 사이드의 보디 패널을 포함한 대다수 외장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도 눈에 띄는 인상 변화를 이끌어 냈다.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서는 과거 모델에 비해 2012년형이 더 멋지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디자인은 두 가지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인피니티의 새로운 M 시리즈가 적용한 테일램프와 디테일을 구성하는 방식 (가로 헤드램프, 트렁크리드에서 범퍼 모서리 사이에 위치하는 선까지 이어진 시그널 램프류의 적층 배치 등) 이 완전히 같다는 것이다.
물론 세부적인 형상에는 차이가 있다. 체O의 QO 마냥 특정 차종과 부품 호환성을 따져 볼만큼 유사하지도 않고, 인피니티 M 이외의 유사차량도 찾아보려 든다면 한 다스쯤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구에 계측용 빗금이 새겨지지 않은 범속한 인류로서는 세부적인 치수 보다는 형상을 먼저 인식하기 마련이다. 표절까지는 아니라 해도 "닮았다" 는 인상은 디폴트 설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다른 차도 아닌 인피니티 M 과 닮은 형상이라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문제다.
북미시장 기준 인피니티 M 시리즈는 47000달러, 제네시스는 34000달러부터 판매된다 .하지만 양자는 기본적으로 같은 세그먼트에서 경쟁하는 유사 체급의 차종이다.  게다가 현대 딜러들은 4만 달러 중반 대의 제네시스 4.6 을 인피니티 M37 이나 M35 의 대안으로 ("연비 좋은 V8이 떨이! V6는 가라!" 라던지) 밀고 있는 상태.
게다가 인피니티 M 시리즈가 공개된 시점은 2009년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피니티는 G 시리즈에 정체된 고객을 윗 차급으로 끌어올리고 렉서스 GS 와 맞붙기 위해 새로운 M 시리즈의 마케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2009년 LA 모터쇼에서 현대의 핵심이 제네시스였다면 인피니티의 중심은 M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2010년 중순 이후에 한국차나 일본차를 포함해 동급 차량 구매를 검토한 북미 소지자들은, 대부분 인피니티 M 을 직접 접했거나, 적어도 존재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2012년 제네시스는 대다수 구매대상에게 "경쟁 모델의 형상" 을 본뜬 (혹은 배낀) 차가 되어 버린 셈이다.
차를 구입하는 데 4-5만달러를 지출하는 고객들에게는  옆집 지미가 "새 인피니티인가?" 하고 물어올 때 마다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는 차 보다는, 한 눈에 현대임을 알아볼 수 있는 (적어도 경쟁차종과는 모양새가 다른)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2012년형 제네시스의 엉덩이 디테일은 낙제점을 받아 마땅하다.

또 다른 문제점은 배낀 디테일 그 자체에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M 시리즈의 디자인부터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개인적인 관점을 섞자면 당장 개선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 내지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랬다면 "적어도 난 싫어" 한 마디면 끝났을테니 말이다.
현대적인 자동차들은 각종 규제나 설계상의 제약 때문에 시각적인 문제점들을 몇 개씩 떠안고 있으며, 자동차 디자인은 바로 그 문제점들을 덮어주기 위한 시각적 장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슈퍼카처럼 디자인적인 비례를 처음부터 충족하고 있는 차종이라면 기능미나 디자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겠지만, 대중차는 착시 현상을 통해 몇세대 전 SUV 만큼이나 높은 보닛이나 사람 배꼽 위로 올라오는 트렁크 리드를 잡아 내려가며 길고 넓고 늘씬한 차 흉내를 내야 하는 입장이다.
FR 구동의 대형차인 제네시스 역시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구형 제네시스의 경우 테일램프의 형상 자체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몰개성하지만, 번호판과 뱃지 사이의 크롬라인과 램프의 분할선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자세히 보기 전에는 하나의 선처럼 느껴지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파란 선 참조)
모서리를 넘어 측면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선은 차 폭에 비해 분명히 길지만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측면에서 차량을 볼 경우 이 선을 차폭처럼 인식하게 된다. 즉 얼핏 보기에는 실제 차 폭보다 더 넓어 보이는 것이다.
넓어보일수록 좋은 세그먼트에서 판매되며 트렁크 리드 자체도 꽤 높은 제네시스에게는 범퍼의 크롬 라인과 함께 차의 후면을 책임지는 핵심 디자인 포인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던 제네시스 컨셉트는 이런 경향이 한층 두드러진다.
차폭을 넓어 보이게 하는 가로폭이 긴 테일램프를 두고, 그 사이에 크롬바로 이어진 시그널 램프를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테일램프 사이의 간극을 임의로 넓어 보이게 하고 있다.
뉴욕에서 제네시스 컨셉트와 제네시스 시판형을 모두 육안으로 지켜본 관전자들이  (완전히 폭이 같은 차인데도) 컨셉트 쪽이 더 넓어 보였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인피니티 M 시리즈의 디자인은...볼륨감을 강조한 측면은 좋았지만, 차 폭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M의 차폭은 1845mm, 전고는 1500mm 로 1890/1480mm 급인 제네시스에 비해 한 눈에 좁고 높아보인다고 할 만한 사이즈는 아니다.  그런데도 FL 이전의 제네시스와 M 의 "인상" 을 떠올려 본다면 미묘하게 M 쪽이 작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런 경향은 개인의 성향차가 아니다.  주요 디테일 자체를 차 폭을 상대적으로 좁아보이도록 배치한 것이 그 원인이다.
일단 곡선으로 이어진 트렁크 리드 자체는 뱅글 버트 계열의 유행을 따르고 있지만, 그 곡선이 지나치게 완만하다.
곡선의 양 끝을 지나는 직선은 시각적으로 본래 길이보다 짧게 인식되므로,  곡면 리드는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트렁크 부위의 폭을 좁아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테일램프의 디테일은 타원의 형태로 눌린 동심원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경우 특별한 시각적 장치가  없는 한, 반분된 동심원 사이에 위치하는 물체는 정상적인 폭보다 짧게 인식된다.
즉 램프 사이에 위치한 트렁크는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램프가 트렁크까지 "파고드는 현상" 역시 이런 문제를 증폭시킨다. 이 경우 램프는 정상 길이보다 길게 인식되지만 트렁크 폭은 좀 더 작게 느껴진다)
M 시리즈의 디자인적 테마 자체가 곡선의 입체적 양감을 살리는 방향이었던 만큼, M의 엉덩이 디테일은 디자인적 통일성 확보를 위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드문드 같은 곳의 소비자평에서 "좁아 보이는 디자인" 에 대한 불만이 지속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감수할만한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 이 부분을 제네시스에 결부시켜 보자.
답이 너무 간단하다.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선택했습니다. 만세.
2할 5푼 치는 타자가 타율 향상을 위해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인 2할 3푼 슬럼프 타자의 폼을 모방한 격이라고 하면 어울릴까.

사실 현대는 그렌저 XG 1차 페이스 리프트 당시, BMW 3시리즈를 어설프게 배끼다 북미에서 인수거부라는 개망신을 당하고 부랴부랴 2차 페이스 리프트를 준비했던 과거가 있다.
 글을 쓰면서도 눈을 가리게 만드는 저 흉물 만큼은 아니지만,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취하는 제네시스의 페이스 리프트 사례를 보면 "그냥 잘 나가는 상대를 모방하면 되는 줄 아는" 혹부리 영감식 밴치마킹의 전통(?) 이 현대 내에 꽤나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결론 : 컨셉트 테일램프 살려내라 이놈들아.

덧글

  • 아방가르드 2011/06/10 08:55 #

    제네시스 컨셉트의 리어를 그대로 가져오길 바랬지만.. 현실은 M이어서 슬펐던 제네시스 F/L. 그래도 직접 보면 LED램프가 켜지는 야간에는 그나마 볼만합니다..;
  • 少雪緣 2011/06/10 10:45 #

    사실 그랜저 HG의 뒷태도 훌륭하지 못한 직선을 갖고 있죠. 대충 가져다 붙인 직선같은 느낌...현대는 왜 갈수록 디자인이...
  • Ya펭귄 2011/06/11 21:56 #

    아마 HG가 디자인하기 제일 어려웠을 겁니다... HG의 디자인상 포지션이 차량업계 역사상 근래 10년 이래로 가장 강렬한 디자인인 YF와 상당히 보수적인 제네의 중간인지라... 사실 그걸 제대로 해냈더라면 남양연구소 지하에서 슈라이어 클론 1호를 만든 후 투입했다고 해도 믿었을 듯...


    HG의 뒷태가 알흠다와 보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지요... 전면을 20분 쳐다본 후 뒷면을 보시면 됩니다... 갑자기 뒷태미인을 보는 느낌이 들걸요....
  • BOT 2011/06/10 12:50 # 삭제

    현대니까요.
  • 지구밖 2011/06/10 13:34 #

    제네시스 F1으로 보고 들어왔다가 재밌게 읽었네요;
  • Ya펭귄 2011/06/11 21:48 #

    그냥 개인적으로 볼때에는 제네리프트 테일은 HG테일이랑 패밀리룩으로 가려고 한 듯 싶더군요...

    그런데 사실 제네초기형의 테일램프 배색을 보자면 차체가 은색일때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궁합이 맞을 수가 없는 배색인지라 건드리기는 건드려야만 하는 상황일 듯은 싶은데... 문제는 이전에 은색이었던 부분을 빨간색으로 덮어씌우니 이번에는 어떤 차체색과도 궁합이 안맞는 지경으로 도리어 퇴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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