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디자인 경향 해설 (간략본) 탈것뭉치


옛날부터 쓰던 거, 원래는 K5 찬양글의 일부였습니다만 질문이 나온 김에 발췌. 하루치 포스팅 날로 먹기


1. 차는 일단 사람이 타고 움직이는 물건이고, 그 속도는 통상적인 사람의 인지속도를 크게 넘어섭니다.
도로와 같이 자동차의 주행 환경을 보장하는 공간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동차의 속도를 절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형상의 자동차를 선택하려 합니다. 대체적인 컨셉이나 세세한 디테일에 대해서는 취향이 천차만별로 갈라지지만 일부러 위험해 보이는 자동차를 선택하는 사람은 변태 말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객관적 안전도를 한 눈에 알아본다는 건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가라 해도 무립니다. 전투력 대신 안전도 측정하는 스카우터 없나 몰라요. 세상에 저 볼보의 안전도는 53만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일반적인 고객들은 대체로 크고 아름다운...아니, 가급적 낮고 넓고 긴 걸 선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적-혹은 본능적 판단 방식은 의외로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낮고 넓으면 옆으로 넘어지지 않을테고, 앞뒤로 길면 어디 박아도 어느 정도 안전할테고, 크면 널찍할테고...기타등등등. 다 있으면 좋은 덕목들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양산차에 비해 디자인적 제약이 작은 슈퍼카나 대형 고급차 (대체로 넓고 길고 낮아 뵙니다) 들은 보편적인 선호를 끌어내기 쉽습니다.

2. 그런데 2000년대를 넘기면서 상황이 좀...아니 많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의 성능이나 공간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간섭하게 된 겁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차 사고가 나면 송장이나 반 송장 치우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1980~1990년대를 거치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됐습니다.
특히 벽에다 적당히 갖다박으면 끝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히 대각선으로 갖다 박는 옵셋 테스트나 측면충돌, 전복과 같은 복잡한 상황에 대한 테스트가 보편화되고, 그걸 기준으로 차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폭증합니다.
CF 에서 별이 몇 갠지 강조하지 않으면 안 팔리는 시대가 되 버린 겁니다.
게다가 도심화 + 주차공간 문제로 차량의 대형화 추세는 오래 전에 끝나 버렸지만, 차내 공간에 대한 요구는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납니다. 레그룸이 부족하다 헤드룸이 부족하다 시트가 짧다 수납공간 내놔라 지붕 말고 안에 스키 넣어야 된다 기타등등등등.
그래서 1990년대 부터는 5m 짜리 차대에도 구겨져 앉는 걸 당연시 여기던 미리견 오랑케(...)들 조차 차내 공간을 앞바퀴가 있는 곳까지 밀어붙이는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3. 일단 측면추돌이나 보행자 충돌과 같은 새로운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차체의 높이를 끌어올리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행자 피해를 줄이려면 충돌한 보행자가 충격을 받지 않고 차체 위로 밀려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요구됩니다. 동시에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탄력적인 "부풀림"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당연히 보닛을 포함한 차체 전면의 높이는 크게 올라갑니다.
측면 역시 마찬가집니다. 측면 충돌시 유리창은 승객을 전혀 보호하지 못합니다. 몸을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서는 탑승자의 팔꿈치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던 도어를 어께 언저리까지 끌어 올리고,  도어 내의 강화 구조물과 10cm 가량의 충격흡수구조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이런 안전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차체가 기존 차량에 비해 5~10cm 가량 높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4. 공간은 더 심합니다.
차체를 키우지 않고 차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단 전후 차축간의 거리인 휠베이스를 최대한 늘려야 합니다.
한때 이렇게 차체를 밀어붙이는 캡 포워드 디자인이 최신 유행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당연히 이 짓도 한계가 있습니다.
남는 방향은? 위쪽 뿐입니다. 차 높이를 키우면 일단 공간은 나오게 됩니다.
트렁크 공간도 비슷하게 넓어집니다. 어차피 안전도를 위해 도어 라인이 올라갔으니, 그만큼 트렁크 공간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 모델 대비 XX% 늘어난 트렁크! 같은 광고문구는 대게 이러다 보니 넓어진 것)

5. 문제는 이런 요구가 보편적인 선호 디자인과 정면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차대가 높아지고 + 헤드룸이 올라가고 + 트렁크는 더 올라가고 + 그 상황에서 길이와 너비는 제한되어 있고...

(발로 그림판으로 그린 설명도)

따라서 구시대 자동차들이 A 에 가까운 비례라면, HYUNDAI 현대의 동급 자동차들은 자연스레 B 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비례가 이 정도까지 달라진다면, 한 눈에 봐도 둔중하거나 상대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문제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런 거 알 바 아니란 겁니다. 소비자의 종족특성은 몰라 안보여 안들려
안전도와 공간이 다 갖춰져야 하지만 그래도 과거 모델에 비해 크고 둔중하고 위험해보이면 절대로 사지 않습니다.
차 만드는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어린애 땡깡이 따로 없는 일입니다만...땡깡보이즈가 그 귀하신 고갱님이십니다. 비위 안 맞춰 주면 지갑과 통장이 텅텅 비어버립니다.

6. 그래서 나온 해답이 착시를 이용하는 겁니다.
일단 안전과 공간을 고려하면 B와 같은 돼지비례는 피할 수가 없으니, B의 비례를 고수하되 눈으로 얼핏 보기에는 A에 가까운 형태라고 "착각" 하게 만들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발상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

착시 디자인 자체는 과거부터 차폭을 강조한다던가 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었지만, 최근 자동차 디자인에선 아예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지 오랩니다.


7. K5 의 전면에 한정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원본은 차체 전체를 헤집는 글이지만 시간관계상)
일단 차체 자체의 높이인 빨간 선의 길이 자체는 굉장히 깁니다. YF 정도면 모를까, 구형 EF 소나타나 옵티마에 비해서는 거의 한 뼘 가까이 높고 1세대 산타페보다 아주 약~간 낮은 정도.
이 정도 길이라면 아무리 폭이 넓어져도 차체가 높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K5 는 몇 가지 트릭으로 시각적 문제를 정돈합니다.

-회색 선의 면을 약간 오목하게 만들어 보닛이 낮은 척 합니다.
-실제로 범퍼에서 꺾이는 각은 주황색 선 쪽입니다만 의도적으로 그 앞에 그릴을 배치해 보닛을 좀 더 길어보이게 합니다.
-헤드램프가 모서리를 대각선으로 타고 흐르는 형태기 때문에 (노란색 선 참조)  조감으로 볼 경우 대각선 일부 (헤드램프 끝까지) 가 폭으로 보입니다.
-범퍼 리드 자체는 분명 파란색 선의 양 끝입니다만, 의도적으로 선을 아래로 꺾어 차체가 더 낮아보이게 디자인했습니다. 차폭 측면에서도 노란색 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 보라색 선 아래도 차체의 일부입니다만, 정면 및 정상면에서 얼핏 보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K5 는 정면, 측면, 후면, 입체, 거의 모든 부분을 이런 방식으로, 철저하게 계산해서 디자인하면서도 미적 완성도를 훼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정말 달인의 경지지요.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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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이나도 2011/06/26 10:08 #

    저런식의 디자인은 다 할수 있다 쳐도 그걸 '양산'까지 이끌어낸 피터 따꺼 (...)
  • Ya펭귄 2011/06/26 11:03 #

    YF도 양산 태울 정도의 횬다이키아 애들인지라 케파이브 정도야 뭐.....
  • H-Modeler 2011/06/26 11:28 #

    아하! 육각형이랑 무지 친한 일에 종사하는 제가 횬다이의 헥사곤 그릴에 그야말로 모에에에!!! 라고 할 정도로 헠후중인것도 다 저런 본능에 의한 것.....[응?!]
  • ㅇㅇ 2011/06/26 12:09 # 삭제

    yf나 k5나 정측면에서 보지 않는 이상 뚱뚱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죠. 착시라는게 참... 새삼 인간의 감각기관의 부정확함을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아울러 그 부정확함까지 활용하는 디자이너들이 어떤 노력을 했을지도 떠올려봅니다.

    ps.요새 현대차는 디자인에 금형기술 자랑하는 느낌도 많이 드네요ㅋ
  • Muphy 2011/06/26 13:40 #

    아..현대차의 과도한 곡면과 절곡은 정말.. '우리는 이런 각도, 이런 곡면으로 뽑아내는 프레스금형도 만들 수 있는데, 제발 이거좀봐주라' 라고 외치는 것 같지말입니다. -_-
  • Muphy 2011/06/26 13:40 #

    본격 슈라이어느님 찬양글인가요!!!!
  • Alias 2011/06/26 13:56 #

    그런데 일단 직접 타보면 K5는 너무 차체가 낮아서 불편합니다.

    그나마 디자인으로 커버쳐서 실내공간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겠지만서도요.
  • BOT 2011/06/26 20:43 # 삭제

    자동차 전공은 아니다만, 컨셉 확정 단계에서는 누구나 날렵하고 멋지게 디자인 할겁니다.
    이걸 실제로 설계에 적용하면서 대빵이나 기술 담당과 얼마나 잘 싸우느냐. 그리고 타협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얼마나 말끔하게 잘 마무리 하느냐가 달려있을뿐.
    이 과정에서 종교전쟁을 얼마나 잘 치룰 수 있느냐도 역량...
  • 아방가르드 2011/06/26 21:04 #

    케밥은 관찰할수록 정말 완성도가 수준급인것같습니다. 문제는 특유의 불판휠과 롤블라인드 선루프 없이는 고ㅈ같아보인다는게 (...)
  • 행인 2011/06/27 03:48 # 삭제

    잘보고갑니다!
  • Eraser 2011/06/27 09:15 #

    저 착시짤은 보면 볼수록 진화하는 느낌 -,-
  • Simba 2011/06/28 01:25 #

    와...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 흑곰 2011/06/28 09:41 #

    우왕 -_-... 어쩐지 요즘 차만 타면 불편해졌다는 느낌이 크던데 이런거군요 __-;;;;;
  • 백전백패 2011/06/28 09:45 #

    최근 차를 바꿨더니
    앞을 보면 본넷이 너무 높게 느껴지고 (좁은곳에서 돌릴때 범퍼/휀다 감이 안옵니다)
    좌우를 보면 문틀이 어깨까지 올라와서 팔걸이도 불편하고 (유리도 작아서 시야도 좁고)
    뒤를 보면 트렁크가 유난히 튀어나와서 후진이 불편했던게 (뒤에 다른차 있을때 타차 트렁크가 안보입니다. 세단인데 후방감지기로도 한계가 있어 후방카메라 고민중일 정도로요)
    저 이유였군요.
    천정에 머리가 닿을때까지 올려도 비슷해서 그냥 적당히 포기하고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현기차 아니고 대우차이지만 추세라는건 엇비슷한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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