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다의 커다란 어코드는 도요타의 이름을 말해선 안될 그 세단(Ave...그만!) 보다 딱히 낫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CR-V 는 쓸만 한 소프트랜더였고 재즈는 세그먼트 최강의 장난감이었다.
특히 시빅, 그 중에서도 Type R은 위대한 GTi 에 독자적인 가치로 도전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핫해치였다.
세아트 같은 업체들이 평범한 양산차에 터보와 로워링 서스펜션 정도로 구색을 맞추는 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혼다는 51구역 출신 디자이너가 그린 것 같은 디자인에 고고한 자연흡기 고회전 엔진을 조합해 젠슨 버튼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했다.
가격이 좀 비싸고 디젤엔진이 형편 없긴 해도, 독자적 철학을 가진 혼다를 선택하는 것은 유럽 어디에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혼다는 남들이 다 고지를 향해 기어오르는 동안 종전의 위치에서 안주한 것 같다.
혼다는 스윈던에서 생산될 차세대 시빅에 올라갈 디젤엔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보를 공개했다.
2.2L i-DTEC 엔진은 최대출력이 150ps, 최대토크 350Nm (35.7kg) 으로, 구형 모델에 비해 각각 10ps, 10Nm 이 강해졌다.
그리고 아이들링 스톱과 마찰감소 설계를 통해 CO2 배출량이 5g/km 감소한 110g/km 까지 억제되었다고 한다.
그래, 종전 모델에 비해 좀 나아지긴 했다.
문제는 폭스바겐이 2008년부터 "2.0L" 에 170ps, 350Nm, 125g/km 인 엔진을 팔아치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배기량이 같은 포드의
몬데오용 2.2L Duratorq TDCi 라면 아예 200PS 의 고지에 등정한지 오래다.
그리고...여기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가? 파사트...몬데오...전부 시빅보다 한 체급 위의 존재들이다.
유럽 시장에서 C세그먼트 모델 가운데 상당수는 1.4~1.6L 급 실용 디젤 모델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1.6L 디젤엔진의 시빅은 적어도 2013년 말에나 출시될 것이며 성능도 불확실하다. 대안을 묻는 영국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혼다가 남긴 대답은 더욱 끔찍하다. "조만간 멋진 하이브리드를 출시하겠습니다"
참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신형 i-DTEC 엔진은 어코드에도 장착되어, 도요타의 이름을 말해선 안될 그 세단에 올라가는 끔찍한 D4계 디젤엔진과 맞붙을 전망이다. (차마 파사트와 몬데오의 경쟁자라고 적을 수가 없다!) 딜러에 넘어가는 가격 역시 동급의 몬데오, 파사트보다 3~5% 가량 비싸다.
이것이 고고하던 혼다의, 그리고 혼다 몰락의 실체다.
C 세그먼트 디젤차량 판매순위가 항상 10~20위권에서 머물던 혼다는, 유럽시장에 좀 더 분명히 머물기 위해서는 소배기량-고효율 디젤 엔진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고고한 혼다와 달리 싸구려 취급을 받던 현대와 기아가 강력한 디젤엔진으로 몬데오와 파사트에 정면도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들은 혼다가 유럽에서 스즈키에게 패하는 동안, 같은 전장에서 도요타를 꺾었으며 세아트와 스코다의 경쟁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혼다는 F1 에서 철수하고 경제성을 이유로 Type- R을 철수시켰으면서도 여전히 유럽 전용 모델을 출시하고 디젤 엔진은 구색을 갖추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유럽(특히 영국) 의 저널리스트들이 새로운 시빅, 그리고 유럽 혼다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시장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기업에게 누가 호의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덧글
하마같은 SUV를 줄줄이 내놓던 십여년 전 미국 자동차 회사들처럼 말입니다... 한번
크게 맞아야 정신 차릴 듯...
디젤 엔진의 내수 수요는 꽝이잖습니까. 현기차의 기술력이 그렇다고 혼다보다 월등하다
고 장담할 정도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 시장을 겨냥해서 분투하고 있죠.
정신력 운운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보기엔 혼다의 문제는 마인드 때문이라
고 봅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혼다 같은 데서 기술력이 없다는 게 영 믿기지가... ㅡ.ㅡ;;;
현기차도 국내보다는 유럽시장 보고 투자한 게 결실을 맺은 건데(...)
그동안은 그것이 잘 먹혀 들어가고 있었는데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