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포스팅 보고 생각난 김에 트랙뷁.
(찬조출연 : 서류상 현역 워리어 옹. (포트머스. 151세. 무직))
1. 옛-날옛날에 바다에는 장갑함(Ironclad)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어요.
커다란 선체에 무시무시한 대포를 여러문 달고 있는 장갑함은 이름 그대로 두터운 장갑 때문에 커다란 대포가 아니면 부술 방법이 없었어요.
하지만 작은 배에 큰 대포를 달면 애초에 올리질 못하던가 속도를 포기하던가 장갑을 포기하던가 지구력을 포기하던가 돈을 포기하던가...이래저래 포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답니다. 결국 동급의 장갑함이 아니면 일반적인 방법으론 상대를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덕분에 값비싼 대형 장갑함을 여러척 가지고 있는 영길리 같은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나 깡패짓을 하고 다닐수 있었답니다.
(로버트 화이트헤드 옹)
2. 물론 장갑함이 무적의 병기는 아니었어요.
장갑함과 비슷한 시절에 미리견 아저씨들은 장대 끝에 기뢰를 매달고 직접 헤딩하는 방식의 Spar Torpedo 라는 무기를 쓰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주인공 보정이 붙지 않는 현실의 소형 보트가 장대를 매달고 직접 충돌하는 Spar torpedo 로 장갑함을 부술 확률은 너무 빈약했어요.
필살기 커맨드가 있건 없건 보트는 보트, 그냥 엎어버리거나 승무원만 총으로 쏴도 보트가 장갑함에 충돌하기 전에 무력화 시킬 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로버트 화이트헤드 옹은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죠. "직접 가져갈 필요 없이 그냥 택배를 보내면 기뢰가 직접 헤딩하면 안되나?"
사실 이런 생각을 하던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화이트헤드 옹의 시대에는 좋은 물건이 있었어요.
바로 쓸만한 에네루프 전지와 모터. 이런 전동 추진기는 엔진과 달리 공기를 빨아들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기뢰가 물 속으로 쭉 헤엄쳐 가서 부딛치기만 해도 된다는 거죠.
네. 바로 "제대로 된 어뢰" 의 등장이랍니다.
3. 어뢰가 나오던 시절에 장갑함은 점점 덩치를 불려서 크고 무겁고 강력한 그리고 비싼 전함으로 발전하고 있었어요.
라이벌 국가보다 강한 전함을 많이 찍어낼 돈과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점점 뒤쳐졌고, 그래서 어뢰의 등장을 많이 반겼죠.
어뢰가 포탄이나 기뢰에 비해 크고 무겁긴 하지만 작은 배에 2~4발 정도 싣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그러니 아주 작고 빠른 배를 여러척 만들어서 저글링 러시가듯 전함에게 접근한 뒤에 어뢰만 쏘고 달아나는 거예요.
전함과 같은 큰 배라면 빠르게 하기 어려울테니 어뢰를 싣는 것과 빠른 속도에만 집중한 작은 배에게 쉽게 따라잡힐테고, 나머지는 물량으로 해결. 간단하지만 합리적인 발상이었어요. 전쟁은 물량이야 형님
이렇게 등장한 배들을 Torpedo Boat, 일본을 통해 들어온 번역어로는 거룻배 艇 자를 써서 어뢰정이라고 불러요.

4. 전함을 굴리는 입장에서는 싸구려 저글링에 비싸게 뽑은 토르가 날아갈 위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해법은? 토르를 더 뽑... 당연히 병력조합.
전함이 어뢰정을 전부 상대할 수가 없다면, 어뢰정만 전문으로 하는 상성유닛 작은 배를 만들면 되는 거죠. 일단 전함 주변을 순찰하다, 어뢰정이 접근하면 빠른 속도로 따라잡아서 속사포로 때려잡는 방식에 적합하게요.
그래서 어뢰정보다 빠른 속도, 적당한 방어력, 그리고 다수의 속사포를 가진 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이름이 Torpedo boat destroyer. 말 그대로 어뢰 + 정 + 세스코 파괴자.
이 신병기를 접하게 된 일본인들은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원어의 뜻을 살리기로 했어요.
"어뢰정을 몰아내는" 용도니까 몰 驅자에 쫒을 逐, 몰아서 쫒아내는 훠이훠이 배라는 의미에서 구축, 보트(정) 보다는 조금 크니까 싸움배 艦자 써서 驅逐+艦. 구축함.
그러니 ISD는 황제의 별을 쫒아내는...
5. 구축함이 나오면서부터 어뢰정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고, 대신 잠수함이라던가 비행기라던가 하는 괴상한 애들이 전함을 위협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구축함은 소중한 전함을 보호하기 위해 하늘도 감시하고 바다 위도 감시하고 물 속도 감시하고...거기에 어뢰정이 사라졌으니 직접 어뢰도 여러발 탑재하고 어뢰정의 역할까지 하는 만능 메이드 전투함으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이름이 Torpedo boat & Submarine & Aircraft Destroyer 로 늘어나버리면 부르기가 너무 힘들죠. 불편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야 할 메이드의 이름이 마리 앙투아네트 조제프 잔 도트리슈로렌이라는 느낌이니까. TSAD로 하면 멋진데
그래서 그냥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 떼버리고 Destroyer 로 확정.
일본 애들은 일본 애들 대로 "어차피 뭐든 쫒아내는 건 같잖아?" 하며 용어변경 없이 구축함이라는 명칭을 유지.
그래서 Destroyer 는 번역할 때 구축함과 파괴자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어버렸답니다.
게다가 시간이 100년 정도 지나니 이제는 전함이나 순양함이 사라지고 해군이 무너지고 영국이 무너지고 졸지에 구축함들이 이런 저런 그런 임무를 다 떠맡기 시작했어요. 덩치도 400~500톤에서 12000톤 (...) 까지 확 늘어났고요.
해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쓰던 단어를 계속 쓴 것 뿐이지만, 전후(前後 건 戰後건) 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구축함" 이라고 불리는 배를 봤을 때 대체 뭐가 구축함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죠. 예산을 구축한다 이 말인가
이런 식으로 실체와 의미가 분리되어버리는 사례는 드물지 않...지만.단어를 쓰는 입장에서는 가끔 의미를 설명하느라 시간 잡아먹는 일이 잦아서 약간 귀찮더라고요. 이제는 포스팅 링크만 던져줘야지
덧 : 초 압축버전이라 여기 나온 내용만 가지고 어디서 아는척 하실 경우 데일수도 있습니다. (...)

1. 옛-날옛날에 바다에는 장갑함(Ironclad)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어요.
커다란 선체에 무시무시한 대포를 여러문 달고 있는 장갑함은 이름 그대로 두터운 장갑 때문에 커다란 대포가 아니면 부술 방법이 없었어요.
하지만 작은 배에 큰 대포를 달면 애초에 올리질 못하던가 속도를 포기하던가 장갑을 포기하던가 지구력을 포기하던가 돈을 포기하던가...이래저래 포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답니다. 결국 동급의 장갑함이 아니면 일반적인 방법으론 상대를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덕분에 값비싼 대형 장갑함을 여러척 가지고 있는 영길리 같은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나 깡패짓을 하고 다닐수 있었답니다.

2. 물론 장갑함이 무적의 병기는 아니었어요.
장갑함과 비슷한 시절에 미리견 아저씨들은 장대 끝에 기뢰를 매달고 직접 헤딩하는 방식의 Spar Torpedo 라는 무기를 쓰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필살기 커맨드가 있건 없건 보트는 보트, 그냥 엎어버리거나 승무원만 총으로 쏴도 보트가 장갑함에 충돌하기 전에 무력화 시킬 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로버트 화이트헤드 옹은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죠. "직접 가져갈 필요 없이 그냥 택배를 보내면 기뢰가 직접 헤딩하면 안되나?"
사실 이런 생각을 하던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화이트헤드 옹의 시대에는 좋은 물건이 있었어요.
바로 쓸만한 에네루프 전지와 모터. 이런 전동 추진기는 엔진과 달리 공기를 빨아들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기뢰가 물 속으로 쭉 헤엄쳐 가서 부딛치기만 해도 된다는 거죠.
네. 바로 "제대로 된 어뢰" 의 등장이랍니다.

라이벌 국가보다 강한 전함을 많이 찍어낼 돈과 능력이 없는 나라들은 점점 뒤쳐졌고, 그래서 어뢰의 등장을 많이 반겼죠.
어뢰가 포탄이나 기뢰에 비해 크고 무겁긴 하지만 작은 배에 2~4발 정도 싣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그러니 아주 작고 빠른 배를 여러척 만들어서 저글링 러시가듯 전함에게 접근한 뒤에 어뢰만 쏘고 달아나는 거예요.
전함과 같은 큰 배라면 빠르게 하기 어려울테니 어뢰를 싣는 것과 빠른 속도에만 집중한 작은 배에게 쉽게 따라잡힐테고, 나머지는 물량으로 해결. 간단하지만 합리적인 발상이었어요. 전쟁은 물량이야 형님
이렇게 등장한 배들을 Torpedo Boat, 일본을 통해 들어온 번역어로는 거룻배 艇 자를 써서 어뢰정이라고 불러요.

4. 전함을 굴리는 입장에서는 싸구려 저글링에 비싸게 뽑은 토르가 날아갈 위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해법은? 토르를 더 뽑... 당연히 병력조합.
전함이 어뢰정을 전부 상대할 수가 없다면, 어뢰정만 전문으로 하는 상성유닛 작은 배를 만들면 되는 거죠. 일단 전함 주변을 순찰하다, 어뢰정이 접근하면 빠른 속도로 따라잡아서 속사포로 때려잡는 방식에 적합하게요.
그래서 어뢰정보다 빠른 속도, 적당한 방어력, 그리고 다수의 속사포를 가진 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이름이 Torpedo boat destroyer. 말 그대로 어뢰 + 정 + 세스코 파괴자.
이 신병기를 접하게 된 일본인들은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원어의 뜻을 살리기로 했어요.
"어뢰정을 몰아내는" 용도니까 몰 驅자에 쫒을 逐, 몰아서 쫒아내는 훠이훠이 배라는 의미에서 구축, 보트(정) 보다는 조금 크니까 싸움배 艦자 써서 驅逐+艦. 구축함.
그러니 ISD는 황제의 별을 쫒아내는...
5. 구축함이 나오면서부터 어뢰정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고, 대신 잠수함이라던가 비행기라던가 하는 괴상한 애들이 전함을 위협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구축함은 소중한 전함을 보호하기 위해 하늘도 감시하고 바다 위도 감시하고 물 속도 감시하고...거기에 어뢰정이 사라졌으니 직접 어뢰도 여러발 탑재하고 어뢰정의 역할까지 하는 만능 메이드 전투함으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이름이 Torpedo boat & Submarine & Aircraft Destroyer 로 늘어나버리면 부르기가 너무 힘들죠. 불편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야 할 메이드의 이름이 마리 앙투아네트 조제프 잔 도트리슈로렌이라는 느낌이니까. TSAD로 하면 멋진데
그래서 그냥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 떼버리고 Destroyer 로 확정.
일본 애들은 일본 애들 대로 "어차피 뭐든 쫒아내는 건 같잖아?" 하며 용어변경 없이 구축함이라는 명칭을 유지.
그래서 Destroyer 는 번역할 때 구축함과 파괴자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어버렸답니다.
게다가 시간이 100년 정도 지나니 이제는 전함이나 순양함이 사라지고 해군이 무너지고 영국이 무너지고 졸지에 구축함들이 이런 저런 그런 임무를 다 떠맡기 시작했어요. 덩치도 400~500톤에서 12000톤 (...) 까지 확 늘어났고요.
해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쓰던 단어를 계속 쓴 것 뿐이지만, 전후(前後 건 戰後건) 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구축함" 이라고 불리는 배를 봤을 때 대체 뭐가 구축함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죠. 예산을 구축한다 이 말인가
이런 식으로 실체와 의미가 분리되어버리는 사례는 드물지 않...지만.단어를 쓰는 입장에서는 가끔 의미를 설명하느라 시간 잡아먹는 일이 잦아서 약간 귀찮더라고요. 이제는 포스팅 링크만 던져줘야지
덧 : 초 압축버전이라 여기 나온 내용만 가지고 어디서 아는척 하실 경우 데일수도 있습니다. (...)
덧글
뭐, 줌왈트급(이거 나오기나 하나...)이면 크기로 보면 순양함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구축함이라고 하니 이젠 구분이 애매하죠. 뭐 사실 구축함이라고 불러도 될만한게 프리킷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흔합니다만.ㄱ-
우리도 세종대왕함보고 구축함이라고 하고 러시아에선 표트르벨리키보고 순양함이라고하는데 말 다했죠.
(결국 나중에는 아예 8인치달고 중순이되었지만 잉여화~)
(그게 다 자기네들 원죄때문이긴 하지만)
해전사와 관련해서 한글로 된 것말고 그냥 영어원문으로 올리면
의미전달이 좀 더 나을려나요? ㅋ
2. 세상에 나라도 많고 해군의 구성도 다양하지만, 적어도 항모나 대형상륙함이 널리고 널린 미국 같으면 구축함이란 함종의 정체성이 (임무면에서)분명하다고 할 수 있죠. 줌왈트가 아무리 크다 한들 항모나 LHD 호위하고 다닐 테니... 그런 면에선 진짜 애매한 함종은 순양함. 구축함 전대 기함 할 것 아니면, 항모 전단에선 그냥 큰 구축함밖에 안될 테니... :)
3. 구축함과 프리깃함 구분은 더욱 모호해졌죠. 차라리 일본식으로 호위함으로 "싸잡아" 부르는 게 합리적이긴 할 듯. 모호함의 극치는 Horizon급 방공함들... "Frégate de défense aérienne type Horizon"라면서 동시에 Fobin의 형식명은 D620.
4. (전통갑판은 아니지만)다들 헬기항모라고 부르는 모스크바는 순양함으로 분류되죠. 인빈서블은 의회의 예산 칼질을 피하려고 처음에는 순양함 딱지를 붙이고 시작했고...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1000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