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닭고기랑 와인 좋아하는 아저씨들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랍시고 에펠이라는 건축가 양반의 지시 하에 세느 강변에 철근더미를 모아들이더니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당대기준 312.2m) 을 뚝딱 세워 버린 겁니다.
처음에는 영국 신사들도 프랑스 보수주의자들 마냥 "그깟 철근더미 ㅋㅋㅋ" 하고 넘어갔습니다...만.
막상 프랑스인들이 완공된 에펠탑을 두고 "우리 탑은 멋지구 세계에서 젤 높구...느그 집엔 이런 거 없지?" 하고 자존심을 살살 긁어대고 다니니 열이 좀 받았던 모양입니다.
에펠탑이 완공된지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뭐가 어찌됐건 일단 에펠탑보단 높아야 됨" 이라는 조건을 내건 그레이트 타워 오브 런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

에펠탑보다 45.8m 가 높은 358m 였고 에펠탑보다 두 배 많은 8개의 지주를 설치해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똑같은 모양이 보이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생김새부터 여러가지 의미로 떠오르는 게 많습니다만 그런 건 무시해 주는 게 신사의 예절일테고.
여튼 이 탑은 정말로 투자자를 모아 착공까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착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설계자인 왓킨이 중병에 걸렸고, 투자자들이 기겁을 하고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설계안은 고자가 반토막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주의 숫자를 절반인 넷으로 줄이고, 하층부인 47m 까지만 임시로 완공, 상부에는 간단한 관람시설만 둔 겁니다.

이 미완성 탑은 1896년 대중에 공개되었지만, 그레이트 타워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민망한 레벨로 오그라들다 보니 그냥 "타워" 혹은 "웸블리 타워"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중을 분산하도록 디자인된 지주가 줄어드는 바람에 지반침하가 발생해 붕괴우려로 접근금지 처분을 받고, 대책을 연구하던 설계자 왓킨도 1901년 중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결국 이 흉물은 몇 년을 그냥저냥 버티다가 1907년에 최종 건설 중단 판정을 받고, 1907년 다이너마이트로 쾅 하고 날려버렸습니다.
남은 철조각들은 다 팔아먹거나 건설자재로 재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 축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 이 탑의 부지를 어떻게 써먹을까 골몰하던 영길리인들은 1923년 커다란 축구장을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이쪽이 영길리 축구의 성지인 초대 웸블리 스타디움이라나요 뭐라나요.
만약 그레이트 타워 오브 런던이 계획대로 완공되었다면 웸블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그냥 다른 곳에 세워졌을지도 모릅니다.
ps: 당시 설계공모안을 보면 재미있는 녀석들도 많습니다. 지구라트 모양이라던가, 로켓 발사대 같은 모양이라던가.
덧글
2세기전 한을 지금 풀고있음.
들어섰어도, 여전히 맨하튼 마천루의 상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인 것처럼요.
"아니 이게 웬 초현대적으로 만들면서 '전통 살린다'는 거여?"
했었는데...이런 것이 있어서 그렇게 말 한 거였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