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디자인 해석의 예시 : 현대 i30 탈것뭉치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관계로 포스팅을 써서 설명을 대신합니다. 아싸 포스팅거리
-처음에는 신형 씨드를 예시로 들까 했는데, 이러면 찬양 일색일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i30을 예시로 사용합니다.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하는 + 디자인을 보는 방법이 있다는 거지, 꼭 이런 식으로만 작업하는 건 아닙니다.

1. 이 차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싫어하시는 분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을 겁니다. 
그 중에 싫어하시는 분들 의견을 들어보자면 그냥 싫어는 제외 대부분 "식상하다- 다른 차와 닮았다" 혹은 "꼭 저렇게 디자인을 해야 하나" 로 나뉩니다. 
이 둘은 다른 의견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의견입니다. 이 문제는 "왜 모든 차는 닮아가는가" 혹은 "왜 일정한 방법으로밖에 디자인을 할 수 없나" 와 연계되어 있거든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차가 뭔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리고 차를 사는 사람들이 뭘 바라는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디자이너에게 상당한 자유가 부여되는 컨셉카 조차도 이 기준에서는 거의 벗어나질 못합니다.

2. 일단 차는 동력기관을 사용해서 + 사람과 화물을 수송하기 위한 기계입니다. 좀 더 엄격히 말하자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라는 조건이 추가될 겁니다. 
이 말은 굉장히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큰 족쇄입니다.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명제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어야 하는데. 네 바퀴 위에서 방향성마저 같다면 거기에서 나올 수 있는 "기능적인 형태" 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차가 나오지 않은 현 시점에서 차가 기존의 교통 인프라를 사용해 달리기 위해서는 엔진과 변속기로 타이어를 굴려야 합니다.
이 크고 무겁고 뜨거운 쇳덩이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탑승자나 화물과는 독립된 공간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승합차나 트럭처럼 수직적 공간이 확보되는 애들은 예외지만요)
결국 엔진과 변속기 따위를 채워 넣은 보닛이 삐죽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물입니다. 
이 보닛이란 구조물은 길이를 늘릴수록 크고 강한 엔진을 끼울 수 있고, 정면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할 공간을 확보하기도 쉽습니다. 

3.   그리고, 앞 쪽에 낮고 긴 평면이 위치하는 형상은 시각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형상의 자동차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고객들은 대체로 크고 아름다운...아니, 가급적 낮고 넓고 긴 걸 선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적-혹은 본능적 판단 방식은 의외로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낮고 넓으면 옆으로 넘어지지 않을테고, 앞뒤로 길면 어디 박아도 어느 정도 안전할테고, 크면 널찍할테고...기타등등등. 다 있으면 좋은 덕목들입니다.
그래서 운전석 전방에 엔진을 두는 고성능차나 고급차들은 보닛을 무작정 좍좍좍 늘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엔진을 얹어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디자인적 매리트도 올라가거든요.

4.그런데...앞서 예시로 잡은 i30 은 C세그먼트에 속하는 실용적 소형 (한국 기준으로는 준중형) 차입니다. 
차의 가격, 엔진의 출력이나 연비, 주차공간 등등의 문제로 무작정 길게 만들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그 짧은 길이를 "사람이나 화물과 나눠 써야 합니다"
실제로 차를 쓰는 사람 입장에선 내부공간이 넓고 안락하길 바라는 게 소비자의 심리입니다. 무릎공간이 몇 cm 길다느니, 천장 높이가 얼마라느니. 다 공간을 최대한 넓히기 위한 선택입니다. 이런 차가 잘 팔려요.
즉 공간 활용 측면에서 실용적인 차를 만들고 싶으면 보닛을 최대한 앞으로 밀어내고, 지붕을 높여서 내부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5. 최근에는 여기에 (2항에서 언급된) "법률적 문제" 가 추가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대충 콘크리트에 60km/h 로 갖다박는 테스트만 해도 안전도 검사가 끝났지만, 이제는 구조물에 비스듬히 충돌하는 옵셋 충돌에 전복과 측면충돌, 최근에는 보행자 충돌 안전성까지 맞춰야 합니다.
옵셋과 측면 충돌의 경우 차체의 축면으로 큰 힘이 걸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체 측면과 필러 (기둥) 이 두터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보행자 충돌시에 보행자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충돌한 대상을 차 위로 자연스레 밀어 올려야 되는데, 이런 형태를 만드려면 보닛 자체도 높아져야 합니다.

6. 즉 과거에 C세그먼트 해치백의 비례를 A 처럼 만들 수 있었다면, 이제는 차체 높이와 윈도우 라인 (후드-유리창의 높이) 를 왕창 올린 B 처럼 디자인해야 하는 겁니다. 

7. 일본의 경차들은 이런 경향의 극단에 서 있습니다. 
어차피 크기에 제한이 있으니, 다 때려치고 공간 확보에만 모든 힘을 쏟은 겁니다. 분명 실용적인 선택입니다. 
이런 식으로 i30 체급의 차를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MPV는 실용적 대안으로 유럽에서 잘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보편적 운전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렇게 보닛이 짧고 키가 큰 타입은 앞서 언급한 "시각적 안정성" 과는 거리가 멉니다. 느려보이고, 뒤뚱거릴 것 같고, 시각에 따라서는 귀여워 보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안정적 형태" 는 아닙니다.
마케팅 입장에서 "인상" 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건 제법 치명적인 문젭니다.
그래서 디자인 파트에 엄명이 떨어집니다. "구조적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니들이 저렇게 안보이게 만들어라"

8.그래서 나온 해답이 착시를 이용하는 겁니다. 
일단 안전과 공간을 고려하면 B와 같은 돼지비례는 피할 수가 없으니, B의 비례를 고수하되 눈으로 얼핏 보기에는 A에 가까운 형태라고 "착각" 하게 만들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발상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

착시 디자인 자체는 과거부터 차폭을 강조한다던가 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었지만, 최근 자동차 디자인에선 아예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i30 역시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합니다.

9. 일단 예시로 i30 의 측면을 봅시다. 
A필러의 기점을 기준으로 보닛의 길이는 25% 정도로 전체의 1/4 가 되지 못합니다. 그나마도 엔진을 앞에 두는 FF 구동계의 특성 상 오버행 (바퀴 앞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의 길이) 이 길고 후드의 높이가 높아서 미관상 보기 좋은 형태는 아닙니다. 
반대로 전-후륜 차축간 거리인 휠베이스는 전체길이의 65% 이상. 차체 후방 구조를 생각하면 전체 길이에서 실내공간이 차지하는 길이의 비율은 70% 를 넘어섭니다. 

결국 전체적인 공간의 분배는 이런 형태가 되는 셈인데... 단순 박스형으로 이런 차를 만드려 하면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을 겁니다.
이제 믿을 건 착시밖에 없습니다.

10. 일단 전면부터. i30 의 기계적인 차폭은 붉은 선입니다. 저 선의 폭만 가지고 직육면체를 그려보면 생각보다 좁다는 게 바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앞에서 시작된 헤드렘프가 측면을 따라 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얼핏 봐서 느끼게 되는 차체 전면의 폭은 파란색 선에 가깝습니다. 즉 길이보다 "넓어보이는 셈" 입니다.  게다가 헤드램프 자체도 차체와 같은 볼륨이 아니라 "툭 튀어나온" 형태기 때문에 실차를 보면 이런 과장된 폭은 더욱 강조됩니다.
그리고 전면 유리창을 앞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처리하면서 보닛 자체를 살짝 오목한 형태로 굽히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사람의 시야에 확장감을 주기 때문에 보닛 전체가 한층 더 넓어 보이게 합니다. 동시에 높아진 보닛 라인을 낮아 보이게 하는 역할도 겸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느끼는 보닛의 윤곽선인 녹색은 실제 형상보다 "낮고, 길고, 넓습니다" 즉 사람들에게 실제 형태보다 안정적인 감각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디자인인 셈입니다.

11. 측면도 마찬가집니다. 파란색으로 강조된 (잘 안 보이지만;) "전면 디테일" 을 주시해주세요.
전면입니다. 그런데 외곽선을 감싸고 도는 헤드렘프나 의도적으로 후퇴각을 준 범퍼때문에 측면에서도 보입니다. 덕분에 얼핏 보기엔 전면의 일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줘서 길다란 오버행을 상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길다란 오버행이 주는 둔중한 느낌을 고려하면 이 부분도 분명 시각적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사이드라인의 빨간색과 주황색 선은 후방으로 갈수록 벌어지면서 전면이 좁고 낮아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조감으로 보면 펜더라인의 각도를 분할해서 전면 팬더를 부풀어보이게 하는 역할도 겸합니다.
두 개의 선은 측면 충돌 안전성을 위해 무지막지하게 높아진 도어의 높이를 커버하는 역할도 겸합니다. 주황색 선 아래쪽에 음영을 줘서 실제 도어의 시작 위치 (아래쪽 선)에 착시를 주고, 빨간색-주황색 선 사이에만 부감을 강조해 도어 자체가 실제 두께보다 그리 두텁지 않아보이게 하려는 술책입니다.
그리고 노란색 선을 앞쪽으로 내려서 사이드미러 쪽 시야를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차체가 좀 더 앞으로 쏠린 듯한- 공격적인 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꾸물텅거리는 선과 이 선을 이용한 음영, 양감, 부감의 적극적 활용이 횬다이에서 말하는 플루이딕 스컬쳐의 주요 테마 중 하나입니다. 선과 음영의 연속적인 변화로 유체적 느낌을 살리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시각적 약점을 덮고 있었던 겁니다.

12. 주요 캐릭터라인간의 관계는 딱 이 각도에서 보면 무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노림수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각 선간의 목적이 뚜렷하죠. 나쁘게 말하면 과장이 심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의 기준을 목적 달성 여부에 둔다면... 적어도 준수한 성과를 낸 디자인임은 분명합니다. "폭이 좁아보여!" 라던가 "차가 쓸데없이 높아보여!" 같은 말은 거의 듣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론 : 씨드가 채고시다 슈라이어 횽님이 채고시다

덧 : 심지어 이 차마저도 방법론 면에서는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앞서 언급된 요소들을 차근차근 대입해 보세요.



덧글

  • Ithilien 2012/12/22 07:16 #

    K5 설명글을 전에 보면서 슈라이어 횽님이 최고시다를 느꼈었습니다. ㅡㅡb
  • 아방가르드 2012/12/22 08:53 #

    구조물에 비스듬히 충돌하는 테스트에서 천하의 캠리와 프리우스v가 대륙의 차마냥 뭉개지는걸 보고 이제 디자인과 안전성을 동시에 해결하는게 만만치않은 문제구나 하는걸 느낍니다. 현대차 디자인은 잔디테일이 너무 강해서 문제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디자인 기법을 잘 따르고있지 않나 싶습니다.
  • Spearhead 2012/12/22 09:18 #

    씨드가 채고시다 슈라이어 횽님이 채고시다(2)
    하지만 그게 한국에 없어서 저는 대체할 물건으로 저 놈을 골랐습니다(...)
  • unit926 2012/12/22 12:03 # 삭제

    ㅜ당신의 해박한 지식에 울고갑니다!
  • muhyang 2012/12/22 14:15 #

    현대차의 근래 디자인을 까는 경향에서 큰 라인을 두고 문제삼는 관점은 그다지 잘 못본 것 같습니다.
    그냥 싫어 내지는 몇몇 디테일이 아닌가 싶군요.

    결론: 위 결론 반복 (...)
  • 런리쓰일산 2012/12/22 14:39 # 삭제

    갠적으로 씨드는 너무 앞이 낮아보여서 뭔가 쏠린듯한 느낌이 드는지라...
    모쪼록 i30 COTY에서 상타면 좋겠슴다...만 골프가 나왔잖아...안될꺼야 아마...
  • 잡가스 2012/12/22 16:00 #

    저런게 패키징과 디자인의 정수죠. 현대가 확실히 잘 하는 분야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kang-kun 2012/12/23 21:54 #

    오오... 유익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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