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당시 울돌목의 조류와 조석 연구 옛것뭉치


제작년 4월에 나온 연구입니다.
보통 울돌목이라는 전장의 조류 특성을 승리의 주요 요인으로 꼽으면서도 정작 명량해전 당시의 조류 특성을 파고들지 않았다는 걸 가정하면 다들 대충 지나칠뻔 한 테마를 꽤 잘 잡아낸 연구라는 느낌.

중간과정 생략하고 결론부터 요약하자면...1597년 양력 10월 25일은 대조기로 6시 32분 정조 후 북서방 밀물이 들어와서 220분 후인 10시 12분경부터 조류속이 4.1m/s 에 달했다가 12시 18분 경에 조류가 남동향 썰물로 바뀌고 다시 14시 42분에 2.8m/s 를 기록합니다.
이건 해군대학이 1965년에 당시 계측치를 기준으로 추산한 밀물-썰물 방향 및 세기, 시간이 전부 (미묘하게) 틀렸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1977년 발표된 박혜일 교수님 쪽 연구는 상대적으로 정확하지만 밀물이 더 강하고 지속시간은 더 짧은 비대칭 조류 특성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여튼 이 연구결과대로라면 일본 수군은 6시 30분깨 시작된 밀물을 기다려 출발한 것이 거의 확실하고 (어란진 출발시점과 동일) 해전 시작시각인 오전 11시경까지 해류의 힘을 받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동했을 겁니다.
시간대로 보면 전투 기동시에도 운신의 제약을 받을 정도의 손해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득을 봤으면 봤지.
반대로 이 시간대 추정 조류를 감안하면 통제상선은 (약해지기 시작했다고는 해도) 유달리 강한 밀물에 대응하며 전투 초반을 혼자 감당한 셈이 됩니다.
이건 지형지물을 이용했다기 보다는 지세와도 맞서 싸웠다고 할 레벨인데... 반대로 일본 수군쪽은 울돌목의 특이성까지는 몰라도 물이 드나드는 거 정도는 따진 셈이 됩니다. 왜놈들이 지형도 살피지 않고 경솔하게 들어왔다는 주장은 이 시점에서 아웃. (...)

그리고 전투종결시각 (오후 2시경) 에서 역으로 시간을 빼서 조선수군 총반격이 시작된 시점은 오후 1~2시 사이로 썰물이 본격화되는 시점입니다. 여기에서는 조류로 보나 잔여전력으로 보나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일본 수군을 남은 배들이 남동으로 밀어내기 적합한 환경입니다.
즉 전투초반은 알려진 것보다 미묘하게 어려웠고 후반은 미묘하게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여튼 오후 6시경까지 인근에 주둔하던 조선 수군은 물이 많이 빠지자 더 버티지 못하고 1차로 이동. 물이 더 빠지자 울돌목 자체를 포기한 채 밀물을 받아 당사도까지 갔습니다. 즉 전투 종결 후 방어시점에서도 조류의 도움은 별로 받은게 없..........

결론 : 해류를 귀신처럼 응용해가며 싸운 건 아님. (그럴 상황도 아니고)
진짜 결론 : 그만해 통제사또의 라이프는 제로야

원문은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지 14권에 나옵니다.

덧글

  • paro1923 2013/02/11 20:54 # 삭제

    하아... 하아아?!!

    통제사또 빠나, 까들이나, 멘붕할 추측인데요...;;;

    "에에이, 조선의 격군들은 괴물이냐!!"
  • 해색주 2013/02/11 21:41 #

    이건 뭐 희대의 사기캐릭터 아닙니까? 왜군에서 수군이라면 정말 죽을 맛이겠군요
  • 행인1 2013/02/11 22:09 #

    헐, 실은 조류도 불리했던 겁니까?
  • 피그말리온 2013/02/11 22:39 #

    어떻게 이긴건지 더욱 미스테리;;
  • 음유시인 2013/02/11 22:45 #

    결론은 이순신 형님이 사기캐라는거죠 뭐.(...)
  • 零丁洋 2013/02/11 22:55 #

    분명 처음은 불리한 상황였다고 봅니다. 미스테리는 이런 불리한 상황을 조류가 유리해져 반격할 때까지 어떻게 철벽처럼 견딜 수 있었을까 입니다.
  • paro1923 2013/02/12 19:22 # 삭제

    좀 더 확대해석해 보면, 반대로 적에게 가장 유리할 시기에 일부러 개전 시점을 잡아서 끌어들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쯤되면 정말로 천시/지리/인화를 두루 꿰는...;;;
  • 위장효과 2013/02/11 23:26 #

    이러니 원균이라는 균형보정용 캐릭터가 필요했었던 거군요.-덤으로 하성군까지-

    통제상선 격군들에게는 조류 그딴 거 보다도 위에 버티고 있는 통상대감이 더 무서웠을테니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 shaind 2013/02/12 00:20 #

    이러면 철쇄설을 떠올릴 수밖에 없잖아요 (......)
  • 누군가의친구 2013/02/12 00:36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돌목을 택한 원인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라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 다음으로 덧붙인 이 한마디 때문이겠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

    즉 적은 수의 가용함선으로 방어가 가능한 유일한 지점이기때문에 조류의 문제는 감수해야 한다고 봤던 모양입니다.
  • BOT 2013/02/12 12:07 # 삭제

    한마디로 조선군과 왜군을 나란히 사지에 몰아넣고 어떤놈이 살아남을지 치킨게임을 했다 이거군요.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건 왜군 전부와 조선군 상선 한척...
  • 암호 2013/02/12 16:23 #

    결론은 이것이지요. 왜변을 왜란 이상으로 만든 폐주 파성군 이균과 원균. 그리고, 이들을 정치적으로 주도 지원한 말종들 까 부수자. 이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두수. 그 후손들이 아주 유명하지요. 윤치화던가, 윤보선이라던가, 윤치영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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